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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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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나이 먹은 한 남자가 서 있다.청년도 아니고 중년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다.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깊은 주름이 잔뜩 패여있다.작은 두 눈에는 피곤이 가득하고 푸석푸석한 피부에 수염이 듬성듬성 난 사내.'세상 풍파를 조금은 겪은 듯 하지만 아직 철없이 보이기도 한다.거울에 비친 나의 날 것의 모습.시간이 지날수록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지지만한 켠으론 적잖이 잘 늙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여 하루하루 날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지금은 거울로 흰머리를 찾아서 뽑고 있는 신세지만곧 흰백발의 머리를 자랑하며 '아따 그 놈 멋있게 늙었네' 라고 감탄할 날이 오겠지. 거울 앞에 서있는 나이 먹은 한 남자는 지금 멋있게 늙어가는 중이다. -100일동안 글쓰기 열두번째 날-
먹과 벼루 어릴 적 유난히 하이퍼였던 탓에 부모님은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날 서예학원에 등록시켰다.지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지만 예전에는 아파트 경로당에서 서예강좌를 열었다.지금으로 따지면 어르신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던 게 아니었을까?워낙 유명한 흙손인 나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못하고 성격이 차분해지지도 않은채 짧은 서예생활을 마쳤다. 그 때 기억이 많이 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 때 맡았던 먹 냄새만큼은 기억한다.벼루에 물을 붇고 먹으로 정성스레 갈고나면 맡을 수 있던 그 냄새.이후 먹물을 팔아서 편하게 쓰기는 했지만 우리 선생님은 한사코 먹을 갈게 했다.여전히 궁금한 건 먹이 먹물을 만드는 걸까 벼루가 먹물을 만드는 걸까?둘다 까만색이라 난 잘 모르겠다. -100일동안 글쓰기 열한번째 날-
무지개다리를 건넌 순덕이 순덕이는 작은 사슴이라고 해도 믿을 체형을 가진 치와와였다.작은 몸매와 대조적으로 유달리 컸던 검은 두 눈은 순덕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무려 15년을 산 순덕이는 내 성장과정을 함께한 소울메이트 같은 반려견이었다. 그런 순덕이의 마지막 가는 길은 너무나 드라마틱 했기에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나가셨고 난 늦잠을 자고 있었으니 날짜는 금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데 순덕이 녀석의 숨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뭐랄까... 굉장히 거북한 숨소리? 태어나서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내가 순덕이한테 다가갔을 때 이미 몸은 뻣뻣해진 상태였다.순간 '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순덕이 힘들겠어요... 오늘 무지개 다리 건너겠어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 아부지가 내 곁을 떠나시기 전까지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난 아부지한테 맞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어렴풋한 기억에 회초리를 맞거나 혼난 적은 있었어도 '맞아' 본 기억은 떠올리기 어렵다.어머니한테는 사실 몇 번 맞았고 그 상황도 생생히 기억난다. 하지만 그 맞았다는 것도 뺨을 몇대 맞은거 회초리를 몇 번 맞은 것 뿐이지그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셨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부모님들이 맞벌이를 하셨기에 신경을 덜 쓰셨던건 아니었을까 의심해보면가족하고 보낸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르기에 그 의심은 아닌거 같다. 하지만 난 아버지를 무서워했고 어머니를 무서워했다.물론 부모님을 무서워했다고해서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다. 부모님에게 느낄수 있는 무서움이랄까? 존경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무서움?두 분은 나에게 존경..
죄송합니다병 사회생활을 하면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많이 쓴다.생각해보면 미안한 일도 아닌데 유독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온다.그렇다고 가볍게 던지는 영혼 없는 말이냐고 한다면 또 그건 아니다.성향 자체가 소심하고 걱정이 앞서는 나로선 내 행동행동 하나에 신경이 쓰인다.내가 던진 말의 뉘앙스, 말의 높낮이, 단어의 선택 하나하나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던지는 내 최소한의 예의다.혹자는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하면 지는거라 그 말을 자주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죄송하지만 공유해주시겠습니까?'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자주 이야기를 한다.괜한 오해로 관계가 망가지는 걸 극도로 힘들어 하는 성격의 나에게 최소한의 방어막이 아닌가 싶다.가..
밥솥과 생존 20대 중반, 군대를 마치자마자 세상에 부딪혀보겠다고 호기롭게 호주로 건너갔다.언어의 장벽이야 어떻게든 넘어 갈 수 있었지만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나에게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넘기 어려운 일이었다.호주생활 초창기 좋은 사람들과 하우스를 쉐어하게 되어 한국에서보다 더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었지만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난 생존을 위해 '적어도' 밥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밥솥은 구매했다.하지만 떠돌이 생활을 하는 나에게 쇠로 된 밥솥은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거였기에 가볍디 가벼운 전자렌지용 밥솥을 구매했다.전자렌지용 밥솥은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아이템'으로 쌀과 물을 적절하게 넣고 10분정도 전자렌지를 돌리면 따끈한 밥을 만들어 주는 여행자들에게는 마법지팡이와도 같은 아이템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하는 첫째의 애교.내 옆에 있는 와이프의 모습. 여전히 연애할 때의 감정이다.응원하고 있는 축구팀이 승리했을 때.세계 각국의 축구 유니폼을 볼 때.추운 겨울 한 2시간 정도 축구 하고 나서 숨이 가빠올 때.외국 공항에서 세관 검사를 마치고 게이트를 나가기 직전.책을 읽다 가슴에 꽂히는 한 문장을 발견했을 때.아무 생각없이 찾아간 커피숍에서 맛있는 커피를 먹었을 때.햇살이 잘 비추는 까페를 찾아갔는데 때마침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설겆이 할 때.친구녀석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할 때. 생각보다 '행복하구나' 하는 장면이 잘 안 떠오르는구나..... -100일 동안 글쓰기 다섯번째 날 -
부모님의 잔소리 부모님의 잔소리는 언제나 예고가 없었다.TV를 보고 있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공부를 하고 있다가도 '훅' 들어왔다.잔소리의 장르는 참으로 다양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잘못은 내가 다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옷 좀 걸어놔라, 일찍 다녀라, 밥 먹을 때 김치 좀 먹어라, 일찍 자라, 일찍 일어나라...좋은 말도 계속 들으면 싫어진다는 데 잔소리는 오죽할까.옷은 걸어 놓고, 좀 일찍 다녔으면 잔소리 안 들었을텐데 왜 그리 어려웠을까?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잔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장르를 달리해서 그 영역을 확장 했을 뿐...나의 성장은 부모님의 잔소리와 함께 했다. 어느덧 불혹이 코 앞에 다가왔다.난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여전히 난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는다. 다만 바뀐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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