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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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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고민 나이는 서른 중반을 넘어 후반에 접어 들었다.결혼을 한 지 3년.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 난 그렇게 가장이 되었다.2009년부터 시작한 10년차 회사 생활은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아주었다.물 흐르듯 큰 부침없이 그냥그냥 흘러온 인생인 것처럼 느껴진다.결혼 전까지만해도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지금 현재 나의 발전이 더 중요했다.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서른 후반의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도 없고 배워 놓은 기술도 없이 마케팅을 한다고 10년을 보냈다.이 생활을 얼마나 길게 이어갈 수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10년 후에 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최소한 마케팅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을 거 같지는 않다. 대표가 되어 기업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모습..
독수리와 황새 '독수리와 황새' 이 두 단어가 쓰여진 메일을 받고 얼마나 글을 쓰고 싶었던가.내가 응원하는 축구팀의 전감독과 현감독은 특이하게 '새'관련 애칭이 있다.한 사람은 독수리라고 불리고 또 한 사람은 황새로 불린다.이 둘은 K리그에서 알아주는 공격수였으며 둘다 일본으로 건너가 J리그 최고의 공격수 자리에 올랐다.두 선수 모두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독수리'는 어이없는 문전결정력으로 빛을 보지못했고'황새'는 월드컵 개막전 첫번째 골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며 4강을 이끌었다. 시간이 흘러 '독수리'는 본인의 둥지에서 플레잉코치-코치-수석코치-감독대행을 거쳐 '순혈 FC서울' 감독이 되었고 '황새'는 2008년 부산을 시작으로 감독생활을 시작하여 본인의 둥지인 포항에서 리그우승과 컵대회 우승을 달성했..
손톱 수난기 그 어렵다는 금연을 너무나도 쉽게 성공했지만 금연보다 날 더 힘들게 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바로 손톱과 발톱 물어뜯기다. 손은 보통 여자들보다 작은데다 손톱을 물어 뜯어 내 두 손은 항상 상처투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손톱물어뜯는 버릇을 고쳐주기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셨다.물어뜯을때마다 혼내기도 하셨고 손톱마다 빨간약을 발라보기도, 쓴 맛이 나는 약을 발라보기도매니큐어를 발라보기도, 반창고를 붙여보기도 했지만 이 버릇은 좀처럼 좋아지지가 않았다.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이 애정결핍에서 기인한다고 하지만 자가진단을 해보자면 애정결핍은 절대 아니다.그렇다고 뭔가 불안해서 물어뜯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습관인 것이다. 아니다, 습관이라기보다 강박증에 가까운 행동 때문일 것이다.난 손톱이 자라나면 보..
신문과 마케팅 스마트폰이 시장에 안착하기 직전까지 신문은 우리네 가장 중요한 매체였다.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누구나 할 거 없이 무가지 신문을 보고 있었고버리고 간 무가지를 수거하러 다니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쉽게 볼 수 있었다.하지만 신문은 소식을 전달하는 최고의 매체자리를 스마트폰에 내주었다.뉴스를 받아 인쇄를 해서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신문의 특성상 스마트폰의 빠른 전달속도와 공유속도를 따라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예전처럼 집 근처에서 신문보면 자전거 준다는 아저씨조차 사라지고 없으니'신문의 위기' 라는 말 조차 이제는 필요없는 말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 와중에 신문의 특성을 가지고 브라질의 '카페 펠레' 라는 커피 브랜드가 신박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커피원두는 진공포장이 되었다 하더라도 신선..
컴퓨터 인생 아들을 위해서라면 모든지 다 해주려고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컴퓨터라는 물건을 참 빠르게 접했다.내 첫번째 컴퓨터는 5.25인치 디스크 두 개가 달려있는 무려 286 컴퓨터였다.초록색(?) CRT 모니터가 육중한 몸을 본체에 맡기는 전형적인 데스크탑 모델이었다.그 당시 컴퓨터로 할 수 있던건 고인돌 이나 페르시안 왕자같은 게임이었다.게임을 한번 하려면 플로피디스크를 순서대로 준비해놓고 기다려야 했다.(플로피디스크라고 하면 어린 친구들은 무슨 소린가하겠지?) 어머니의 선경지명이었을까? 아님 내 미래의 복선이었을까?그 당시 찾기도 힘들었던 컴퓨터학원에 등록해서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하셨다.당시 배운 언어는 GW-Basic 이었다. 베네치아를 통해 키보드 연습도 적잖이 했던걸로 기억한다.그 때 더 열심히 했다면 ..
거울 나이 먹은 한 남자가 서 있다.청년도 아니고 중년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다.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깊은 주름이 잔뜩 패여있다.작은 두 눈에는 피곤이 가득하고 푸석푸석한 피부에 수염이 듬성듬성 난 사내.'세상 풍파를 조금은 겪은 듯 하지만 아직 철없이 보이기도 한다.거울에 비친 나의 날 것의 모습.시간이 지날수록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지지만한 켠으론 적잖이 잘 늙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여 하루하루 날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지금은 거울로 흰머리를 찾아서 뽑고 있는 신세지만곧 흰백발의 머리를 자랑하며 '아따 그 놈 멋있게 늙었네' 라고 감탄할 날이 오겠지. 거울 앞에 서있는 나이 먹은 한 남자는 지금 멋있게 늙어가는 중이다. -100일동안 글쓰기 열두번째 날-
먹과 벼루 어릴 적 유난히 하이퍼였던 탓에 부모님은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날 서예학원에 등록시켰다.지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지만 예전에는 아파트 경로당에서 서예강좌를 열었다.지금으로 따지면 어르신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던 게 아니었을까?워낙 유명한 흙손인 나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못하고 성격이 차분해지지도 않은채 짧은 서예생활을 마쳤다. 그 때 기억이 많이 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 때 맡았던 먹 냄새만큼은 기억한다.벼루에 물을 붇고 먹으로 정성스레 갈고나면 맡을 수 있던 그 냄새.이후 먹물을 팔아서 편하게 쓰기는 했지만 우리 선생님은 한사코 먹을 갈게 했다.여전히 궁금한 건 먹이 먹물을 만드는 걸까 벼루가 먹물을 만드는 걸까?둘다 까만색이라 난 잘 모르겠다. -100일동안 글쓰기 열한번째 날-
무지개다리를 건넌 순덕이 순덕이는 작은 사슴이라고 해도 믿을 체형을 가진 치와와였다.작은 몸매와 대조적으로 유달리 컸던 검은 두 눈은 순덕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무려 15년을 산 순덕이는 내 성장과정을 함께한 소울메이트 같은 반려견이었다. 그런 순덕이의 마지막 가는 길은 너무나 드라마틱 했기에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나가셨고 난 늦잠을 자고 있었으니 날짜는 금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데 순덕이 녀석의 숨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뭐랄까... 굉장히 거북한 숨소리? 태어나서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내가 순덕이한테 다가갔을 때 이미 몸은 뻣뻣해진 상태였다.순간 '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순덕이 힘들겠어요... 오늘 무지개 다리 건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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