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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영국

[축덕여행 출발 전] 내려놓기

'나 그만해도 될까???‘

봄 냄새가 솔솔 올라오던 2월 말, 아내한테 퇴사 이야기를 했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2023년 업무 계획을 짜던 사람에게서 튀어나온 퇴사이야기여서 아내에게는 더욱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것이다.
14년이란 짧기도 길기도 한 사회생활에 견디지 못할게 남아있을까 싶었는데 인생은 그 이상의 것을 던져주고 날 보고 씩 웃었다. ’자 여기'
결국 처참히 무너진 나에게 할 수 있는 건 ‘도망’ 뿐 이었다. 쪽팔리게..
어깨 위에 앉아있는 아이들과 아내가 걱정되었지만 도망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았다. 그만큼 끝까지 왔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고 뭘해야 하나. 이제 뭘 먹고 사나, 애들 교육비는 어쩌나... 걱정이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퇴사 얘기를 들은 아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 고민에 마침표를 찍어줬다.

‘그래. 좀 쉬어.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잘해왔자나. 이 기회에 쉬면서 리프레시하고 재정비 좀 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아내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는데 그 다음 말이 날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 그래 리버풀 가면 되겠네!!! 이번에 쉬면서 다녀와. 지금 아니면 갈 기회가 두 번 다시 없을 수 있어.‘

리버풀... 내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40살 생일에 안필드 경기장 콥(KOP) 응원석에서 경기를 보는 것일 정도로 애정하는 클럽.
그 곳을 다녀오라니.. 가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자나.. 난 지금 퇴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아내가 퇴사를 휴직으로 잘못 들은 건 아닐까??? 내가 재취업하기 전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그 전까진 허리띠 졸라매야되는데...
물론 리버풀 얘기를 들었을 때 잠시 흔들리고 설레였지만, 이 상황이 여행이라니?!

한 가정의 가장으로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아내가 쐐기골을 넣었다.

‘아직 적금 살아있다. 보내줄 수 있을 때 가. 아님 적금 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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