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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아시아

[후쿠오카 여행]치욕의 역사를 잊지말자! 구시다신사櫛田神社 (くしだじんじゃ )


1895년 10월 8일. 조선의 왕비가 일본의 시정잡배들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바로 일본 시정잡배들은 "여우사냥"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렀던 을미사변乙未事變 이다.  왕비가 살해된 것도 끔찍하고 말도 안되는 일인데 이 시정잡배들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명성황후의 시체를 불태워버렸다. 다행히(?) 불에 타고 남은 유골 일부를 몰래 수습해서 빼돌렸다. 


명성황후의 시시비비를 떠나 한 나라의 왕비가 살해되었다는 것은 국가의 치욕이며 그만큼 국력이 처참하게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쿠오카 여행기에 갑자기 왠 명성황후 이야긴가 싶겠지만 후쿠오카에 을미사변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물건이 보관되어 있는 신사가 있다. 이번 여행기엔 해당 신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숙소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캐널시티에선 도보로 5분 거리에 바로 '그'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찾아가는데 어려움은 없다.

문제의 '그' 신사. 구시다신사櫛田神社 ( くしだじんじゃ)의 누문樓門에 도착했다. 


평범해 보이는 이 곳 구시다신사가 왜 문제의 신사일까? 을미사변에 가담한 시정잡배 중 한 명인 도우 가츠아키藤勝顯가 사용한 칼 히젠토肥前刀 가 바로 이 구시다신사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명성황후를 2번째로 베어 마지막 숨을 끊었다고 스스로 자랑하고 다녔고 히젠토에 스스로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라는 문구가 새겨넣었다고 한다. 이는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는 의미라고... 이쯤되면 시정잡배가 아니라 최소 사이코패스 아니면 또라이였을 것이다.


즉, 이 신사는 조선의 왕비였던 명성황후를 살해한 증거품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라는 이야기다. 칼이 보관되어 있을 거 같다는 의심이 아니라 신사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실이다.


몇몇 블로그에선 이런 말도 안되는 물건을 보관하고 있기때문에 방문하지 않았다는 글도 보았지만 개인적으론 그런 역사를 정확히 인지하고 마주해야 또 다시 그런 비참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정에 넣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누문에 威稜(위릉)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다. 위릉은 '존엄한 위력'이라는 뜻으로 여기선 천자나 천황의 위광을 뜻한다. 현판 아래는 꽤 큰 오오쵸우친大提灯 이 걸려있다. 

누문을 통과하면 볼수 있는 구시다 신사 안내판. 

친절히 한국어로도 쓰여있지만 본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과거는 단 한 줄도 씌여 있지 않다. 신사에선 '세상에 다시 나와서는 안되는 물건'이기 때문에 참회의 뜻으로 명목으로 히젠토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지만 안내판을 봐서는 과연 이들이 참회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구시다 신사 경내도. 본전외에 많은 신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안내판 옆으로 소 한마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소머리를 만지면 복이 온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때문에 소머리가 반질반질하다. 

중신문 너머로 757년에 지어진 구시다 신사의 배전이 보인다.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전통있는 신사이지만 앞서 설명했던 것 처럼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한 칼을 보관하고 있어 한국인에겐 결코 반갑지 않은 신사이다. 더욱이 불로장생과 번영의 신을 모시고 있는 신사에 살육을 저지른 칼을 보관하고 있다는게 실소를 금치 못한다.  


사진 속 문에 3개의 문양이 그려져있는데 이는 스사노오노 미코토素盞嗚尊(祇園宮), 오하타누시노 미코토大幡主命(櫛田宮), 아마테라스 오카미天照皇大神(大神宮)을 나타낸다. 하카타사람은 오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둥글게 썬 오이의 모양이 素盞嗚尊(祇園宮)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붉고 직선적이었던 스미요시 신사와는 달리 곡선이 많고 나무 고유의 색 그대로 드러내어 조금 더 차분한 느낌이다. 

영천학의우물霊泉鶴の 井户

이 우물을 한 모금 마시면 본인이, 두 모금 마시면 가족이, 세 모금 마시면 친척과 친구들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한다. (一口目に、自分の不老長寿を、二口目に、家族の不老長寿を、三口目に、親戚縁者の不老長寿を)불로장생의 신을 모시고 있어서 이런 우물도 마련되어 있는 듯 하다. 참고로 과거에는 마실 수 있었으나 지금은 수질 문제로 마실 수 없다고 한다. 



본당을 뒤로 하고 히젠토와 명성황후의 얼굴을 본따 만든 관음상을 찾아 볼 요량에 신사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무리 살펴봐도 찾을수가 없어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히젠토는 외부에 공개하고 있지 않으며 관음상은 쇼호쿠지聖福寺 주변 셋신원節信院에 있다는 것 알았다. 분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이쇼일왕행차기념관大正天皇行幸記念殿. 

다이쇼 5년에 열린 육군특별대 행사를 보기 위해 들렀을 때 지었던 行在所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건물로 원래는 후쿠오카 현청에 있었으나 1957년 구시다 신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일단 건물 이름부터 심히 기분이 나쁘다. 다이쇼일왕이라니. 다이쇼시대는 대한제국이 철저히 일본에게 유린당하던 시기였다. 다이쇼일왕이 존재감 없는 일왕이라는 평가를 받고는 있으나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유린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터. 구시다 신사는 알면 알수록 기분 나쁜 신사임에 틀림없다.  

작은 도리이가 서있는 작은 신사. 이곳은 어떤 신을 모시고 있을까?

신사 구석진 곳에서 오줌 싸는 소년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뭔가 의미가 있을 거 같아서 사진을 찍어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이 소년의 이름은 すんまっせん. 일본어 홈페이지에서 찾은거라 어떻게 읽는지 어떤 뜻인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이 오줌 싸는 소년 동상 博多やまかき小僧을 후쿠오카 시청 앞에서도 볼 수 있는데 후쿠오카시 명예시민인 西島伊三雄가 후쿠오카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축제나 이벤트가 있으면 의상을 갈아 입는다고 하는데 이 당시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신사 안에 또 다른 신사, 이나리신사稲荷神社. 구시다 신사의 분위기와는 대비되는 강렬한 붉은 색 도리이가 눈길을 끈다. 일본에서는 주황색이 불, 태양, 생명을 나타내는 색으로 귀신이나 재앙,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도리이에 주황색을 발라 신사 안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걸 막는다. 


뭐 의미상으로는 이렇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론 주황색 안료는 수은이 원재료로 옛 부터 나무의 부식을 맞는 방부제로 사용되어 도리이에 칠해졌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썩지 않는 돌 도리이는 주황색이 칠해져있지않네?! 

이나리신사는 오곡의 풍작을 기원은 물론 예술, 금융, 개운 등의 다양한 의미가 더해졌다.

나무나 돌로 만든 도리이보다 빨간 도리이가 더 마음에 든다. 붉은색 도리이 하면 가장 유명한 곳이 교토의 후시미이나리 신산데 나중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몇 개 안되는 도리이가 만들어내는 모습이 이 정돈데 천 개의 붉은 도리이가 만들어 낸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본전 뒤편에 에마絵馬가 잔뜩 걸려있다. 에마는 신사에서 기도한게 이루어졌을 때 사례로 봉납하는 그림이 그려진 나무판이다. 옛날에는 기도가 이루어지면 말을 봉납했지만 현대에 이르러선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내는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나무판 뒤에 소원을 적어 넣는다. 소원을 적어놓는 에마에 한글로 적은 소원을 많이 볼 수 있다. 대부분이 역사를 똑바로 성찰하라는 내용인데 그 모든 소원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돌로 만들어진 도리이. 신사 구석구석 작은 신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긴 어떤 제신을 모시는 신사일까?

구시다 신사가 유명한 이유는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를 주관하는 신사이기 때문이다. (야마카사: 신을 모신 가마) 이 어마어마한 가마를 메고 달린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

1241년 처음 시작하여 700여년 이상 내려온 전통있는 축제로 매년 7월 1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된다. 하카타 돈타쿠 축제와 함께 후쿠오카 2대 축제로 알려져 있다. 막부 시절 하카타 일대에 역병이 유행했을 때 죠텐지 사원을 창립한 쇼이치코쿠시가 기도수를 뿌려서 마을을 정화하고 역병퇴치를 기원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외에도 다양한 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출처: https://yokanavi.com/ko/feature/29244)


기온 야마카사의 하이라이트는 7월 15일 오전 4시 59분부터 시작하는 오이야마카사追い山笠. 1번 야마카사부터 차례대로 쿠시다신사에 야마카사를 메고 옮기는 쿠시다이리櫛田入り를 진행한 후 약5km의 오이야마코스를 야마카사를 메고 질주한다.

(출처:https://feelfukuoka.com/ko/culture/yamakasa)


구시다신사의 미나미진몬南神門. 가와바타도리 상점가上川端商店街와 연결되어 있다.  

미나미진몬 옆에 위치한 児安社. 육아의 신 子安観音(こやすしゃ) 을 모시고 있다명성황후 관음상은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상관없다.

야마카사의 전면를 마주하게 된다면 구시다 신사를 한바퀴 돌아본 셈이다. 

정신없이 화려했던했던 야마카사의 후면과는 달리 전면은 그나마 차분한 편이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건 일본인들의 종특인가 싶기도 하다. 다시 한번 이 거대한 구조물을 메고 뛴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다음에 후쿠오카에 온다면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 축제 기간에 맞춰 와야겠다.

본전 좌측 출입문. 이 출입문을 주변으로 1000년된 부부 은행나무와 스모 선수들이 힘 자랑을 하며 들었던 역석力石이 위치해 있다. 


이 출입문을 등지고 서면 주변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물을 하나 볼 수 있다. 바로 하카타 역사관이다. 이곳에 문제의 물건 히젠토가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는 비공개이며 앞으로도 언제 공개할지 알 수 없다. 

미리 이 곳에 칼이 보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가지 않았다는게 안타까웠다. 공개하지 않더라고 끊임없이 칼은 언제 공개되느냐 왜 공개하지 않느냐 문의하고 요청해야 신사측에서도 마음을 움직일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부터 행동에 옮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게 너무나 아쉽다.

신에게 바치는 술樽酒(たるざけ)

뜬금없지만 술통에 쓰여진 글자를 일본은 전세계에서 폰트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상황에 맞게 폰트를 자유자재로 변형해서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는 모습에서 가끔은 감탄을 자아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캘리그라피가 유행하고 폰트를 하나의 디자인요소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 정도가 아닌가 싶다. 보다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길 바라본다. (국뽕 잔뜩 채워서) 사실 한글이 히라나가나 가타카나보다 더 아름답지 않은가? 분명 색다르고 독창적인 디자인요소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사 이곳 저곳을 자세히 둘러보니 1시간 30분 가량 걸린 듯 하다.


지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신사 하지만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한 칼을 보관하고 있는 신사. 구시다신사는 결코 가볍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난 '한국인이면 제발 신사는 가지 맙시다!' 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신사는 일본의 종교 시설이며 가장 일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신사를 방문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다만 그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가지고 방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미로 아니면 그 나라의 풍습을 따른다는 이유로 참배를 하는게 무슨 문제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곳이 야스쿠니신사나 구시다 신사라도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여행을 가는데 복잡하게 무슨 역사 공부까지 하고 가냐고 하지만 우리는 여행지에서 맛난 음식을 먹기위해 수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분류하고 결정한다. 결코 어렵거나 복잡한 준비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역사만이라도 알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포스팅에서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는 말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부디 끔찍한 히젠토라는 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올바른 처리방안이 마련되어 제대로 된 역사의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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