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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00일 글쓰기

나비

아버지는 2015년 1월에 돌아가셨다. 손자가 세상에 빛을 보기 8개월 전이었다. 아버지는 손자를 보시지 못했고 손자는 할아버지의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 

 

나에겐 할아버지/할머니의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모두 내 부모님의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만 그 분들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기에 세월이 지나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항상 젊은 모습을 유지했다. 자고로 할아버지, 할머니는 깊은 주름과 하얀 머리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내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나 젊으셨다. 이제는 사진 속의 분들보다 내 나이가 더 많아진 세월까지 와버렸다.

 

명절날 할아버지 댁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용돈을 받아오던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친구들에게 할아버지는 시골이고 따뜻한 집이고 풍성한 식탁이었다. 난 부모님을 따라 '친척'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다녔다. 그분들은 나를 본인들의 손자처럼 이뻐해주고 챙겨주셨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뭔지 모를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난 그분들에게 손자같은 아이지 손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타본 적 없는 나는 내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 듬뿍 받고 용돈도 많이 받고 그렇게 크길 바랬다. 하지만 아버지는 2015년 1월에 돌아가셨다. 손자가 세상에 빛을 보기 8개월 전이었다.

 

큰 애는 할아버지를 '산속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어릴 적 아이를 산소에 데려갈 때 '할아버지 집은 산속에 있어' 라고 이야기 해주었는데 그 이후 할아버지는 '산속할아버지' 가 되었다.

 

https://pixabay.com/ko/photos/%EA%BD%83-%EB%82%98%EB%B9%84-%EA%B3%A4%EC%B6%A9-%EC%9E%90%EC%97%B0-%EB%82%A0%EA%B0%9C-3488208/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 때쯤 산소에 갔다. 마침 배추흰나비가 무덤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에게 얘기했다. '아가, 산속할아버지가 아가 보고 싶어서 나비되어 오셨네. 할아버지한테 인사해.' 목이 메이고 두 눈이 뜨거워졌다. 아이는 그 천진함으로 나비를 보며 인사했다. '안냐세요 할부지. 전 진이라고해요'

 

그 뒤로 눈에 보이는 모든 나비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유치원을 가는 길에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도 산속할아버지는 어디든 큰 애를 따라다녔고 큰 애는 할아버지를 반갑게 맞았다. '아빠, 할아버지가 나 보고 싶어서 오셨어!'

 

나도 이제는 나비를 보고 인사를 한다. '아부지 오셨어요? 손자, 손녀 마음껏 보고 가세요.' 그 순간 나비는 풀잎이건 나뭇잎이건 돌어귀건 날개짓을 멈추고 사뿐히 내려앉는다. 마치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양.

 

언젠가 큰 애는 나비는 더 이상 할아버지가 변신해서 자기를 보러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좋다. 산속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만큼 손자를 사랑하고 가셨고 손자는 그 사랑을 듬뿍 받았을테니까.

 

퇴근길에 하얀 나비 한마리가 내 앞에 날아와주었으면 좋겠다.

 

-100일동안 글쓰기 여든두번째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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