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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쓸쓸하지만 자유로운 곳 "신두리해수욕장"



1990년대 말 보았던 영화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불치병의 걸린 두 남자.. 단순히 바다를 한번도 보지 못했기때문에 바다를 보러 떠난 두 사람....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거친 바다를 처음 맞이하고 그 곳에서 숨을 거둔다.
그렇게 재밌지도 않았고, 감동적이지도 않았던 영화이었음에도 지금까지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건
마지막에 그들이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서 마지막을 준비하던 장면과 같이 흘러나왔던 노래때문이 아니었을까?

새해를 맞이해서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자 하는 마음에 여행계획을 세웠다.
아직 "혼자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1박 2일 같이 자고 오는 건 무리였지만 당일치기는 가능하다 생각했고,
이왕이면 조용한 곳에 가서 바다를 마음껏 즐기자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했다.
다양한 곳들이 나왔지만 다 이전에 들어본 곳들... 내가 들어봤으면 남들도 들어봤을거고 그런곳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모든 곳을 제외하고 남은 곳이 바로 태안의 "신두리해수욕장".
조용하다고는 하는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숨겨진 나만의 비밀 정원 같은 느낌이 왔고 주저 없이 2011년 첫 여행지로 결정 했다.


기차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기차로는 가는 방법을 많이 알아보지 못했고
버스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남부터미널에서 태안행 버스를 타고 다시 태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는 방법.
조금은 불편하고 시간도 정해져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런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남부터미널에 10시10분에 도착하여 표를 샀다. 5분만 빨리 왔어도 10시 05분 버스를 탈 수 있었을 텐데.
버스비는 8,700원... 약 2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면 태안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설이라 그런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버스에 오르셨다.
왠지 나만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된 듯한 느낌?

버스는 정확히 10시 40분에 출발하였고 2시간 가량 달려 태안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시외버스터미널은 여느 버스터미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기 다른 종착지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온통 북적였고,
식사를 하는 사람, 멍하게 TV를 보는 사람, 옆사람과 얘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착하자마자 "신두리"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했다.


신두리로 가는 유일한 버스. 버스 번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플랫폼에 들어오는 어떤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비는 2,200원.... 1시 20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리도 딱딱 맞아 떨어지다니^^)
태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두리해수욕장까지는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플랫폼이 크지 않아서 신두리로 가는 버스타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12번 플랫폼... 그곳에 신두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


신두리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 사람은 나 뿐이다.
다른 플랫폼에는 안면도나 다른 유명한 곳으로 가는 버스들이 정차하고 적지 않은 수의 커플들이 버스에 올랐지만...
이 버스에는 오롯이 나만 올랐다.
마치 내 자가용이나 된 양.


혼자 올라탄 버스에서 버스기사 아저씨와 대화를 나눈다.
서울시내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들..
혼자 앉아있는 날 보자마자 아저씨가 한방 날리신다.
"어째 혼자간데요~ 여자친구는 어딨고?"
그렇게 아저씨와 말을 텄고 30분 가량 가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엔 꼭 여자친구와 함께오라는.... 여자친구는 멀리서 찾지 말라는 말과 함께...

언제 올라갈거냐고 물어보신다.
4시에 버스가 오니까 그걸 꼭 타라고 그 버스 놓치면 6시 20분에나 버스가 있을거라고 조언해주신다.
그렇게 아저씨와의 작별...


결국 신두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주변이 상당히 조용했다.
몇몇 숙박업소가 있지만 거의 개점 휴업상태.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냄새가 난다.파도소리도 들린다.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순간....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내 머리 속에 오래 남아있는 바로 그 영화... 그 영화가 오버랩된다.
내가 찾던 그 곳...
그곳을 드디어 찾았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그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등대 하나.
다른 해수욕장과는 다른 해변....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조용한 해변...


"신두리"라는 곳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해수욕장이면서 갯벌같은 느낌도 가지고 있고..
나 혼자 인것 같으면서도 수많은 것들이 함께하는 곳...
그래서였을까? 혼자인 해변에서도 외롭다는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즐거웠다. 소리도 지르고.. 미친놈마냥 끝도 없는 해변을 뛰어다니고....
정말 신났다.


해변가를 둘러쌓고 있는 리조트에는 공룡모형도 준비되어있다.
왜 공룡이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는데 기가막힌 재료가 되어준다.


아직까진... 눈에 하트모양이 보인다.... 사랑을 잃어버렸음에도^^


바다란 곳은... 사람을 굉장히 서정적으로 만들어준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다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불가사리는.. 물 빠진 이 곳에서 살아남기위해 버둥거렸으리라....


멀리 사랑하는 연인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이곳은 외로움도 사랑도 함께 있는 그런 곳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백사장.... 살짝 얹혀진 안개가 그 분위기를 더한다.




나도 이 곳에 발자국을 남겨본다.
옆에는 아무도 없다. 순전히 내 발자국 뿐이다...



나 혼자 수줍게 신두리인증에 나서본다^^ (션군 @ 신두리)


혼자 나름 다짐도 해본다....
아마 지금쯤이면 바다가 다 안고 갔을 내 다짐...


이렇게 신두리를 느껴간다.
끝도 없을 백사장은 어느새 나에게 자신의 끝을 보여주었다.
대단할 것 같은 "사구"는 세월의 영향인지 인간의 무관심인지 모르겠으나 어떠한 것들로 인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내가 신두리를 자유롭게 느꼈다고 생각할 무렵...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들의 목적지는 신두리가 아니다. 그저 스쳐지나가다 만난 바다가 좋아서 내린 여행객들뿐.
하지만 신두리는 그 사람들에게 마저 사진을 꾸밈 없이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그런 바다를 보고 감탄할 것이다.
내가 신두리를 보고 감탄 했던 것 처럼..


밀려나갔던 물이 제자리로 들어온다.
이제 떠날 시간이라는 걸 바다가 나에게 알려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4시...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버스는 다시 30분 가량 달려서 날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놓을 것이고,
난 거기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나의 마음은 참으로 가볍다.

내가 바라면서 왔던 이 곳... 조금은 내려두고 싶었던 것...
신두리는 그 무거운 짐을 덜어내어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놓는 것을 허락했다.

신두리.. 난 이곳에서 쓸쓸함을 느꼈고... 따스함을 느꼈고... 자유로움을 느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사람 또한 나처럼 사랑에 실패해 힘들어하거나...
세상에 지쳐 힘들어 한다면.. 난 주저없이 그 사람의 두손을 잡고 신두리로 가라고 얘기할 것이다.

나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반갑다.. 신두리....

이건 보너스....
신두리 겨울 바다 파도소리...
가슴이 답답하거나... 지금 많이 지치신 분들이 듣고 힘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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