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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00일 글쓰기

에어콘

2년간의 신혼집 생활을 마치고 어머니와 합가를 할 때 일이다.

어머니 집 거실에는 15년이 되어가는 집안의 터줏대감 에어콘이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처음 순백의 하얀색은 온데간데 없고 누렁이마냥 색이 바랬다.

특별히 관리해 준 적도 없었지만 고장 한 번난 적이 없이 15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물론... 1년에 한두번 틀면 많이 틀었다 말이 나올 정도니 

실제 사용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참녀석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다.


<이미지출처: http://m.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7082902101832816001>

한 번의 여름만 지나면 이사를 가게 되어 에어콘의 보유여부를 가족회의에 상정했고

결국 터줏대감 에어콘은 '퇴출'이 결정 되었다.

하지만 이사갈 때 버리자던 약속은 어머니의 무지막지한 실행력 앞에 무용지물이었고

그렇게 에어콘 없는 여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합가를 한 이후 곧 여름이 다가왔다.

어른들이야 샤워를 하고 부채질로 버틸 수 있다고 해도 문제는 걸음마를 배우던 아들이었다.

땀띠가 나지는 않을까 더위를 먹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에어콘을 버리자고 했던 내 결정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여름을 보내고 버렸어도 되었을 것을...

그렇다고 에어콘을 새로 들이자니 이사갈 집과 어울릴까가 걱정이 되어 함부로 사지도 못했다.


결국.. 우리집에는 선풍기가 5대가 되었다.. 

거실에 2 대, 어머니 방에 1 대, 아기방에 1대, 부엌에 1대

어떤 방법이 전기세를 더 많이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해 여름은 참으로 덥게 지냈다.

여름의 끝무렵에 버티다 못한 가족들은 결국 새로운 에어콘을 사게 되었고

선풍기 5대와 에어콘 1대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막바지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다.


새로 이사한 집으로 와서는 에어콘 한 대와 선풍기 한 대만 들고 왔다.

여름이 되어 에어콘을 켜는 날이 오면 무더웠던 여름 5 대의 선풍기가 돌고 있던 

그 집의 모습이 생각나서 몹시도 그리울 것 같다.


-100일동안 글쓰기 마흔두번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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