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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축구이야기

[축덕여행:스타디움투어]영국축구의 살아있는 역사, 크레이븐 코티지

스탬포드 브릿지를 뒤로하고 근처에 위치한 풀럼 FC의 홈구장 크레이븐 코티지(Craven Cottage)로 향했다.

 

지도 상으로는 꽤 가까운 것 같았는데 막상 걸어보니 거리가 쪼금 된다.

구글맵을 켜고 요리조리 골목길을 헤치고 나가니 저 멀리 'FULHAM FOOTBALL CLUB'이라고 쓰인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풀럼 FC 홈구장도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명타워와 'FULHAM FOOTBALL CLUB' 문구가 없다면 축구장인지도 모를 정도로 주변에 녹아들어 있다.

이래서 영국 사람들에게 축구가 일상이 될 수 있는 건가? 크리그 경기장을 보면 '난 축구경기장이다!!!!!'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다. 주차장도 넓어야 하고, 널찍한 광장 같은 것도 있어야 경기장 같아 보이는 걸까? 그래서 축구를 보러 '경기장'이란 특별한 곳을 가는 느낌이다.

물론 토트넘 스타디움이나 스탬포드 브릿지는 그 규모로만 보면 어마어마하지만 주택가에 살포시 내려앉은 느낌이라 로컬 서포터들은 그냥 동네 슈퍼 가는 느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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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풀럼 FC의 홈구장 크레이븐 코티지(Cranven Cottage). 1896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풀럼 FC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유서 깊은 경기장이다.

여기서 놀랄 대목은 1896년 지어진 이 경기장이 제일 오래된 경기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일 오래된 경기장은 메이든헤드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인 요크로드로 1871년 지어졌다고 한다. 1871년에 조선에선 신미양요가 발발했다. 🙄

이 작고 길쭉한 직사각형은 예상하고 있듯이 출입문이다. 이 문을 통해서 관중들이 입장을 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크레이븐 코티지의 입구(?). 이 문을 통해 선수들이 입장을 한다.
붉은 벽돌만으로도 이 경기장의 역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공장처럼 보이는 건 안 비밀

Cottage Gate에서 다음 경기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내가 옛날사람이라 그런지 LED를 비롯한 디지털 안내판보다 수작업으로 바꿔야 하는 안내판에 더 애정이 간다.

저 안내판을 다는 사람의 마음과 키보드를 두드려서 일정을 입력하는 사람의 마음은 확실히 다를 테니까.

경기장 정문에는 조니 헤인스(Johnny Haynes)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진 선수는 아니지만 풀럼에서만 594경기를 출전한 팀의 레전드이며 프로축구선수로는 최초로 주당 £100를 받은 기념비적인 선수라고 한다.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 형님 인싸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PUTNEY END 지역

눈으로 보고 온 나조차도 여전히 믿기 어려운 좁디좁은 출입구는 재건축을 할 만도 한데 예전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풀럼 FC의 티켓 오피스. 소심한 ENFJ라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바깥에서 빼꼼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구단에서 운영하는 원정버스로 원정 경기를 다녀오는 상품인 Coach Travel의 안내문이 티켓오피스 안내판에 붙어있다. 풀럼 FC의 다음 원정경기는 리버풀!!!!! 아무래도 나는 리버풀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YNWA!!!! 

코티지 게이트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홈 서포터 출입구. 출입구 근처에 구단 스토어와 스타디움 투어 오피스가 위치해 있다. 

크레이븐 코티지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좁디 좁은 문. 이 문으로 어떻게 들어가라는건지...

공식 용품샵에도 잠시 들렀다. 검정/흰색 패턴이 마치 성남FC의 것처럼 보인다. 시즌이 끝나가는 중이라 22/23시즌 유니폼을 할인하고 있었다. EPL 유니폼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고자 한다면 시즌 끝물을 노려라!!! 아, 사이즈가 있을거라는 보장은 없음.

스타디움 투어 안내소. 안내소에서 참석 확정을 하면 안내 직원이 '몇 시 몇 분까지 조니 해인스 동상 앞으로 오라'라고 안내해 준다. 온라인으로 티켓팅을 했어도 꼭 참가 확정을 해야 된다.

투어시간이 남아서 구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한 바퀴라고는 하지만 구장 뒤쪽이 템즈강이라 헤인스 스탠드 외에 볼 수 있는 곳이 리버사이드로 이어지는 'Hammersmith End'  뿐이다. 이 골목길 끝에 템즈강이 흐르고 있다.

템즈강 옆에 위치해 있는 리버사이드 출입구.  아니... 여기는 새로 만든 출입구인데 도대체 왜!!!!!! 출입구 크기는 예전이랑 똑같이 만든 거냐고!!! 

리버사이드 스탠드는 증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조감도 상으론 공사가 끝나면 템즈강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거 같은 모습이다. 템즈강+크레이븐코티지를 끼고 있는 호텔. 아 이건 못 참지~ 다음에 런던에 오면 무조건 여기서 1박이다!!!

템즈강을 다녀와서도 스타디움 투어 시간이 남아서 조니 헤인즈 동상 앞에서 앉아서 옛 뉴스를 꺼내보았다. 설기현 풀럼시절이라니... 근데 하필 뉴스가... 또 교체출전 ㅠㅠ 

크레이븐 코티지 투어 시작!

투어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아 하나둘 조니 헤인즈 동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정말 하나둘만 모였다.

놀랍게도 투어참가자는 나를 포함 3명. 투어 가이드가 2명이었으니 1:1 VIP 투어가 된 것이다. 나머지 두 명은 중년의 부부였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오신 것으로 기억한다.

1879년 창단한 (그레이트) 런던 최초의 축구 클럽 풀럼 FC의 홈구장에 발을 내디뎠다. 풀럼 FC 슬로건은 London`s Original Football Club인데, 런던을 연고로 한 클럽이 13개나 되다 보니, 런던 최초의 클럽임을 강조하는 슬로건으로 전통성을 어필하고 있다.

스타디움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좁디좁은 출입구의 내부를 볼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외부에서 본 출입구 크기가 실제 크기였다.

출입구가 왜 이렇게 좁은지 투어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경기장이 지어질 당시에는 저 문이 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서 문이 좁아졌냐? 당연히 아니다. 문은 그대로지만 저 문을 출입하는 사람의 몸집이 커졌기 때문에 문이 좁아진 것이다. 도대체 그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왜소했다는 거지?
 

불편한 출입구를 재건축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니 헤인스 스탠드'가 영국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강제 문화 계승 중.

코너플레그 근처에서 바라본 크레이븐 코티지. 지금까지 갔던 경기장들과는 규모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현재 수용인원이 2만 2천 명이라 작다는 느낌보단 딱 적당하단 느낌이었다.

내가 항상 부르짖는 2만 석 규모의 경기장. 이 정도면 FC서울 경기 때 꽉 차보일 텐데... 지금의 6만 석은 너무 크다 ㅠㅠ

Riverside Stand

증축 중인 리버사이드 스탠드

공사를 통해 3만 석 규모로 확장된다. 좌석의 확장도 확장이지만 증축 공사를 통해 강변 쪽으로 호텔(사진 상 검은 벽 부분)도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투어가이드 아저씨가 템즈강을 볼 수 있는 호텔이 생긴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시던지.

크레이븐 코티지 스타디움 투어는 그야말로 역사
그 자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니헤인즈 스탠드’는 영국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개축을 할 수가 없는데 이 덕분에 나무로 된 계단을 지금까지 사용할 정도로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3500여 개의 오래된 Bennet(나무 종류인듯한) 나무 의자도 여전히 현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나무 의자보다 더 극적으로 영국축구의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아이템이 또 있을까?

아치볼드가 디자인한 스탠스는 기둥 때문에 이렇게 시야 방해석이 존재한다. ㅋㅋㅋ 멋모르고 여기 티켓팅하는 사람 분명 있다.

조니 헤인스 스탠드 맞은편에는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가장 현대적인 리버사이드 스탠드가 위치하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조니 헤인스 스탠드에서 역사 맛보기를 했다면 크레이븐 코티지 스타디움 투어의 하이라이트 코티지 파빌리온에서 역사에 빠져볼 시간이다.

코티지 파빌리온 Cottage Pavilion

크레이븐 코티지를 상징하는 코티지 파빌리온은 아치볼드가 선수들의 탈의실을 경기장 내에 넣을 수가 없어서 별도의 공간에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건물이다.

경기장 밖에서 보았던 코티지 게이트 Cottage Gate를 통해 선수들이 입장한다. 옛날 동네 골목길에서 많이 보던 대문 느낌이다. 벨튀해야 할 각

코티지 파빌리온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에는 홈/원정팀 탈의실과 프레스룸, 레프리룸(Referee Room)이 있고 2층에는 VIP를 위한 체어맨스 라운지와 코티지 발코니가 위치해 있다.

1층에서도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원정팀 라커룸이 자리 잡고 있다. 라커룸 크기는 스탬포드 브릿지 홈팀 트레이닝 룸 크기 정도 되려나? 워낙 크기가 작다 보니 맨유의 전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은 이 라커룸에 18명의 선수와 코치, 물리치료사 등이 머물기에 너무 좁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크레이븐 코티지는 매우 전통적인 구장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기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크레이븐 코티지의 드레싱 룸은 내 사무실보다 작다


그렇다면 홈팀 라커룸은 어떨까?

홈팀 라커룸은 원정팀 라커룸을 지나 더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부터 원정팀과 레베루가 다르다.

하지만, 코티지 파빌리온 자체의 규모가 작다 보니 홈팀 라커룸이라고 해서 원정팀과 엄청난 차이는 없다. 개인 사물함이 있고 좀 더 폭신한 의자가 있다는 정도? 타구장 홈 라커룸과는 달리 아늑한 맛이 있다.

풀럼 FC의 최전방 공격수 알렉산드르 미트로비치.
스타플레이어라 라커룸 제일 좋은 곳을 배정했다고 한다.

오른쪽 공격이 잘 안 풀렸던 것 같은 작전판. 말판에 선수이름 프린트해서 붙이는 건 조축이나 EPL이나 다를 것 없구나.


라커룸을 둘러본 후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바 느낌의 체어맨스 라운지로 활용하고 있다. 홈팀, 원정팀 감독과 관계자들이 경기장 간단한 미팅을 하기도 하고 풀럼 FC의 이사회가 열리도 한다.

체어맨스 라운지 전체를 박물관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어 라운지 곳곳에 옛 사진과 오래된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공간 자체가 상징성이 있다 보니 물건 하나하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크레이븐 코티지 스타디움 투어가 즐거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열과 성을 다해 클럽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투어 가이드 때문이었다.

본인도 아이였을 때부터 풀럼 FC 서포터였고 조니헤인즈스탠드네 본인 자리도 있다며 자랑하던 투어가이드 아저씨는 궁금한 거 하나를 물어보면 두세 개를 알려줄 정도로열정적이셨다.

코티지 파빌리온의 하이라이크는 단연 코티지 테라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시야가 경기를 보는데 최적은 아니지만 축구경기를 테라스에서 본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다시 1층으로 내려와서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는 경험을 해본다. 다른 구장과 달리 코티지 파빌리온이라는 경기장과는 별도의 건물에서 나와 피치로 입장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될 듯하다.

코티지 파빌리온 옆에 서있는 Putney End 스탠드. 5,900여석으로 보통은 중립구역이이지만 빅클럽과의 매치에서는 원정석으로 활용된다. 지금은 리버사이드 스탠드 공사때문에 원정으로 1900여석만 운영중이라고 한다. 



크레이븐 코티지 스타디움 투어가 마무리를 향해 간다.

스타디움 투어의 마지막은 조니 헤인즈 스탠드 밑에 자리 잡고 있는 트로피 캐비닛에서 마무리된다. 첼시의 트로피 캐비닛과는 하늘과 땅차이지만 토트넘 트로피 캐비닛과는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ㅋㅋㅋㅋ 계속 고통받는 토트넘.

물론 토트넘의 우선 트로피는 유로파리그, FA 컵와 같이 무게감이 있는 것들이어서 풀럼의 트로피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전시해 놓은 '꼴'을 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든다.

잊지 못한 스타디움 투어 경험을 선사해 준 두 명의 투어 가이드. 트로피 캐비닛 앞에서 트로피를 설명하는 모습인데 표정에서부터 투어 가이드 본인들부터 신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투어를 마무리하면서 본인들은 작은 구단이라 마케팅비용이 많지 않기 때문에 꼭 투어 후기를 남겨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END 가 아닌 AND? 투어를 마치는 장소에 'WELCOME TO CRAVEN COTTAGE'라고 환영의 인사가 쓰여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Riverside Stand 가 완공되고 나면 또 와볼 수 있겠지??


막연하게 스탬포드 브릿지 가까이 있으니까 한번 가봐야지 생각하고 방문한 경기장이었는데, 스타디움 투어를 하면서 힐링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방문객들이 늘어나고, 그에 맞게 우리는 매번 새롭게, 더 크게, 더 편하게만 만들려고 하지만, 오래된 것을 기반으로 현재의 상황에 맞게 고쳐나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더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도 좋지만 '화이트하트레인'이 철거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 우리의 동대문 운동장도 크레이븐 코티지처럼 될 수 있었을 텐데...  최신의 런던에서 옛것(?)을 만나 센치해졌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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