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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축구이야기

[축덕여행:스타디움투어] 영국 축구 역사가 녹아있는 곳, 구디슨파크 Goodison Park

어느덧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난 이미 명예 Scouser가 된 기분이다. 안필드는 벌써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서 서울월드컵경기장 같은 느낌이고 리버풀 시내 나갈 때면 슬리퍼 찍찍 끌고 동네 마실 나가는 기분이 든다. 마음의 고향을 찾았다고나 할까? 

리버풀에서 뭘 더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리버풀에 자리 잡고 있는 또 하나의 축구팀 '에버튼 FC'가 떠올랐다. 안필드에서 걸어도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에버튼의 홈구장 '구디슨파크'가 위치해 있다고 하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안필드에서 스탠리파크 Stanly Park를 가로지르면 맞은편에 구디슨파크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리버풀과 에버튼 FC 간의 경기를 '머지사이드 더비 Merseyside Durby'라고 부르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는 머지사이드라고 해서 '머지'라는 곳을 사이에 두고 경기장이 위치해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건가 생각했다.

당연히 그런 뜻은 아니고 머지사이드는 리버풀이 속해있는 영국의 주를 일컫는 말인데, 머지사이드 주를 리버풀과 에버튼이 연고지로 사용하고 있어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부르는 것이다.

호수 넘어 보이는 구디슨파크의 모습이 꽤 근사하게 보인다.

1892년에 지어진 구디슨 파크는 에버튼 FC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 구장이 '세계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이라고 한다. 😮 대한민국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인 '스틸야드'가 1990년 말에 지어졌으니 그 시간의 차이가 무려 100여 년 가까이 난다. 

한적한 공원을 지나서 구디슨파크의 정문에 도착했다. 에버튼의 레전드 딕시 딘 Dixie Dean 동상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긴다.

딕시 딘을 빼놓고 에버튼 FC를 이야기할 수 없는데, 12년간 447경기에 출전해 395골을 기록하며 에버튼의 황금시대를 이끈 레전드 중의 레전드다. 딕시 딘은 1980년 3월 1일 리버풀과의 더비매치데이에 구디슨파크에서 경기를 관람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구디슨파크의 정문을 가득 채우고 있는 Memorial Tile.

축덕여행을 하면서 Memorial Tile이 가장 부러웠다. 본인이 축덕이라면 내 마지막 안식처가 지지하는 팀의 경기장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난 죽으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내 유골이 뿌려졌으면 하는 소원이 있는데 이는 불가능한 바람이다. 근데 이 불가능한 바람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Memoria Tile 아닌가 싶다. 죽어서도 내 팀과 함께하겠다는 소원이 이렇게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난 그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이 작은 타일에 내 이름을 새겨 넣고 싶다.

GOODISON ROAD 표지판은 다른 축구팀 서포터들의 스티커로 그 목적성을 상실했다. 스티커를 제거해서 깨끗하게 만드는 대신 그대로 놔두는 영국횽아들의 멋짐이라는 게 폭발한다.

온통 에버튼 블루로 도배되어 있는 구디슨파크

필 야기엘카 Phil Jagielka의 모습을 그린 벽화.

필 야기엘카는 에버튼에서 12년간 수비수로 뛰면서 322경기 출전 14골을 기록했고, 그 가운데 6년간 주장을 역임한 레전드 선수다.

구디슨파크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 주택에서 볼 수 있는 Graeme Sharp의 강렬한 벽화. 그레엄 샤프는 딕시 딘과 함께 에버튼 역대 가장 위대한 공격수로 뽑힌 또 한 명의 레전드다.

영국 주택의 독특한 양식 때문일까? 주택가의 맨 마지막 벽에는 어김없이 벽화가 그려져 있다.

Goodison Park Wall of Fame을 장식하고 있는 ‘Everton Giants' Plaque.

Everton Giant는 '클럽 명예의 전당'과 같은 개념으로 2000년 11명을 처음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매 시즌마다 새로운 Everton Giant를 발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선정된 선수는 23명이다.

철옹성 같은 모습의 메인스탠드 외벽.  좁은 골목길을 하나 두고 주택가 옆에 이렇게 거대한 경기장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나 리버풀 역시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데 축구가 그만큼 영국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게 아닌가 싶다. 

Goodison Road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Holy Trinity Statue(삼위일체 동상)

에버튼 FC를 대표하는 세 명의 미드필더인 하워드 켄달 Howard Kendall, 앨런 볼 Alan Ball, 콜린 하비 Colin Harvey가 주인공인데 1969-70 시즌 에버튼 FC의 리그 우승을 이끈 주역들이다.

구디슨파크 안내도. 안내도에 표시된 B 출입구에서 스타디움 투어가 시작된다.
 


구디슨 파크 스타디움 투어 시작

 

구디슨파크 스타디움 투어는 트로피 캐비닛에서 시작한다.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120 시즌을 보내고 있는 1부 리그 최장수 클럽답게 1부 리그 우승 9회, FA컵 우승 5회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이후에는 리그 우승 기록 없이 95년 FA컵 우승과 2009년 FA컵 준우승 기록만 보유하고 있다. 

박스 안으로 공을 넣으면 Gwladys Street가 공을 네트 안으로 빨아들일 것이다.
- Howard Kendall

 

1878 Brasserie 라운지. 1878년은 에버튼 FC가 창립된 해이다.

라운지 벽면에는 에버튼 FC의 엠블럼이 두 개나 전시되고 있다. 왼쪽 엠블럼은 1920년에 사용된 가장 오래된 엠블럼이며 오른쪽 엠블럼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엠블럼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클럽답게 엠블럼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1978년 이후부터는 엠블럼에 루퍼트 왕자의 탑 Prince Rupert`s Tower가 빠지지 않고  있다.

구디슨파크 스타디움 투어에서도 프레스룸을 방문하는데  단순히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 다른 스타디움투어 달리 가이드 할머니께서 마치 손자/손녀들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시듯 에버튼 FC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시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오랜 시간 에버튼을 응원하던 백발이 되어버린 서포터가 들려주는 에버튼 FC의 역사 이야기는 그 어떤 전래동화보다 재미있었다.

할머니가 자기 전에 전래동화를 들려주신다면 이런 느낌일까? 백발의 가이드 할머니가 옆집 할머니처럼 느껴졌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NIL SATIS OPTUMIM

에버튼 FC의 엠블럼에도 새겨져 있는 문구로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뜻의 라틴어다. 'EXIT'를 제외하고 스타디움 투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글귀 중 하나다.

구디슨파크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출입문. 

Pitch로 가는 통로에 위치한 Brian Labone Suite.
브라이언 라본은 에버튼 FC의 레전드 수비수로 534경기에 출전했으며 1963년 리그 우승팀의 일원이었다.

뼛속까지 Blues라 그런가? 'one Evertonian is worth 20 Liverpudlians(한 명의 에버튼선수가 20명의 리버풀 선수보다 낫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강렬한 인상을 뽐내고 있는 사진 속 인물은 에버튼 FC의 레전드 '딕시 딘 Dixie Dean'이다. 사진에서 '테베즈'의 느낌이 난다. 몸매가 동네조축아저씨의 느낌이 나서 친근하다. 흰색 반바지를 한껏 배바지로 끌어올려 입어서 더더욱이나 그렇게 보인다.

조축아저씨 삘 나는 딕시 딘은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레전든데 최초로 등번호 9번을 단 공격수이며, 단일시즌 60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딕시 딘은 구디슨파크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구장에서 가장 럭셔리한 공간인 Dixie Dean Suite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축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피치로 나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Dixie Dean Seating

이 출입문을 지나면 구디슨파크 스타디움 투어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구디슨파크의 피치 Pitch

초록의 잔디와 짙은 파랑의 관중석의 조화가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빅클럽의 으리으리하고 현대적인 경기장과는 달리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의 구디슨파크다.

구디슨파크 메인스탠스의 좌석. 오래전 지어진 경기장이라 좌석 중간중간 기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놀랍게도 구디슨파크도 아치볼드 리치가 설계했다. 영국 축구사에 아치볼드 리치가 끼친 영향력이 새삼 놀랍다.

스탠드에서 또 하나 신기한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스탠드 앞쪽 의자는 폭신한 방석까지 달려있는 좌석이지만 스탠드 뒤쪽은 딱딱하고 불편한 오래된 나무의자라는 것이다.

앞쪽은 VIP석이고 뒤쪽은 일반석인 것 같은데 이왕 바꿀 거 뒤쪽 나무의자도 플라스틱으로 바꿔주면 안 됐나 싶다. 뭐 덕분에 이렇게 옛날모습의 경기장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스탠드 구경이 끝나면 다시 경기장 내부로 들어간다. 스타디움 투어가 끝나가고 있다.

경기장 내부로 들어오면 원정팀 라커룸으로 안내를 받는다.

좁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꽤 넓었다. 이렇게 넓은 규모의 원정팀 라커룸은 본 적이 없었다. '원정팀을 꽤 대우해주네'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원정팀 라커룸은 L 자 형태로 되어있는데 이로 인해서 팀원 간 원활한 소통이 어렵고 감독이 전술지시를 내리려고 해도 효율적으로 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라커룸 바닥이 다소 울퉁불퉁한데 이를 통해 원정팀 선수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샤워실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유럽임에도 칸막이 없다.

반면 홈팀 라커룸은 아늑하고 편안하다. ㅋㅋㅋ

빅클럽에 비할 수는 없지만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회복을 위한 욕조도 잘 준비되어 있다.

Once Everton has touched you, nothing will be the same
일단 에버턴이 당신을 터치하면, 어떤 것도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 Alan Ball


영국의 쪼잔함(?)을 만끽한 후 좁은 통로를 따라 Pitch로 이동했다. 이 계단을 통해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나온다.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선수들이 Pitch로 나올 때와 동일하게 한 줄로 서서 'Z Car' 노래를 들으며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수많은 유명 감독들이 앉았을 홈팀 덕아웃에 앉아 폼을 재본다.

구디슨파크는 세계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이고, 가장 많은 경기가 열린 경기장이다. 뿐만 아니라 최초로 조명 스탠스와 스코어보드가 설치되었고, 그라운드에 지하 난방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진과 같이 경기 중에 선수단이 앉아있을 수 있는 덕아웃이라고 불리는 테크니컬 에어리어가 영국 최초로 설치된  축구역사상 정말 아이코닉한 경기장이다.

그라운드를 구경하다 바닥에 명판처럼 생긴 쇳조각이 보였다. 다른 스타디움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라 저게 뭘까 궁금해졌다.

명판에 적힌 내용을 보니 돌아가신 누군가를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지지하는 팀 경기장에 묻혀 영원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영광을 이곳 구디슨파크에서는 누릴 수 있'었'다.

구디슨파크 피치 주변으로 800여 명의 에버튼 팬들이 잠들어있는데, 경기장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 구단에선 별도의 비용 없이 자리를 마련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2004년 이후부터는 더 이상 남는 공간이 없어 이런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한다.

Memorial Tile 하나만 하려고 해도 적잖은 비용을 내야 하는 지금이랑 비교하면 축구에 대한 낭만이 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파크 엔드 Park End라고 불리는 필립 카터 경 Sir Philip Carter Park Stand.

구디슨파크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오랜 시간 덕아웃에 앉아 경기장을 바라봤다.

풀럼 FC의 크레이븐코티지도 그랬지만 난 오래된 경기장이 더 끌린다. 팀을 지지하는 서포터가 가득 들어찰 수 있는 적당한 규모와 팀의 오랜 역사가 경기장 곳곳에 녹아있는 경기장. 그래서 크레이븐코티지와 구디슨파크의 스타디움 투어를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투어를 마치고

PitchSide 관람을 마지막으로 구디슨파크의 스타디움 투어가 마무리된다. 스타디움 투어를 마치고 나와서 경기장, 주변의 거리풍경을 보면 그전과 다른 느낌을 받는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축덕의 집'. 구디슨파크 주변, 안필드 주변에서 집 외관을 팀 컬러로 칠해놓은 집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왜 영국이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나라인지 느낄 수 있다.

투어를 마치고 나서도 아쉬움이 남아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경기장 높은 외벽이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독특한 건 에버튼 FC의 주요 업적의 그림이 경기장 외벽을 따라 그려져 있다.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아보면 에버튼 FC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1995년 FA 컵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누르고 1-0으로 우승했을 당시 주역 선수 4명 (Neville Southall, Stuart Barlow, Paul Rideout, Daniel Amokachi) Subbuteo 형태로 매표소 외벽에 그려져 있다.

구디슨파크를 더욱 구디슨파크처럼 보이게 하는 GOODISON 사인.

나 이 사진 좀 잘 찍은 거 같다. ☺️

구디슨파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스타디움 투어를 마치고 나서 동상을 보니 이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은 역시 아는 만큼 느끼는 것 같다.

경기장 길 건너편에 evertonone이라는 이름의 구단용품샵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루퍼트 왕자의 탑'을 본뜬듯한 건물 외형만 봐도 여기가 에버튼 FC 관련된 건물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샵 입구에 쓰인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에버튼 FC가 이뤄온 역사를 살펴보고 나니 이 문구가 왜 구단의 상징이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처음 리버풀에서 1+1 느낌으로 시작한 구디슨파크 스타디움 투어였지만 영국축구의 오랜 역사를 잔뜩 느낄 수 있는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추가로...


영국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여행을 정리하기 전까지 에버튼 FC가 새로운 구장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미리 알았다면 새로운 짓고 있는 경기장 현장이라도 가봤을 텐데 아쉬웠다.

그런데!! 사진을 정리하다 놀라운 광경을 찾았다.

리버풀을 떠나는 기차를 타기 1시간 전.  '루퍼트왕자의 탑'을 보기 위해 스탠리파크를 찾았다.

탑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했지만 리버풀을 떠나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이대로 탑만 보고 떠나기가 아쉬워 공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머지강을 볼 수 있는 포인트에서 리버풀의 전경을 담았다

당시에도 저기 공사하는 건 뭐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2024-2025 시즌에 맞추어 개장하게 될 에버튼 FC의 새로움 홈구장 브램리무어 도크 스타디움 Bramley-Moore Dock Stadium의 공사현장이었다.

브램리무어 도크 스타디움을 방문할 기회가 생전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공사하는 모습이라도 봤으니 만족해야지.

이 경기장이 완공되면 지금의 홈구장인 구디슨파크는 헐어버리고 일대를 재개발한다고 하니 구디슨파크를 보고 온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아무래도 나에겐 여행운의 신이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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