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문화생활

지하철 2호선, 도서관이 되다.



평균 출퇴근시간 3시간.

매일 매일 지하철에서 3시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보낸지도 3년이 넘었다.

 출퇴근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난 사실 책을 지금처럼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가끔 여행에세이나 만화책을 읽을 정도.. 


그러다 어떤 계기로 무라카미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를 읽게 되었고

마음의 위안(?) 을 얻으면서 책 읽을 읽는다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사실 회사원의 신분에서 책을 읽을 시간을 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침에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힘든 몸을 이끌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서 

책을 읽는 다는 건 굉장한 육체적/정신적 수고를 더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진 3시간이나 되는 출퇴근 시간은 그야말로 금쪽과도 같은 시간이다.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다보니 책을 읽기 가장 편한 자리가 어디인지도 알게 되었고(앉아서 보는거를 제외하고)

출근 시간에는 A라는 책, 퇴근 시간에는 B 라는 책을 읽는다는 혼자만의 독서법도 세우게 되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책장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이 꽂히게 되었고

책의 양에 비례하여 내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 책을 읽다가 지하철 내의 풍경을 바라보면 예전과 점점 달라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90% 이상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풍경.

뉴스를 보기도하고 게임을 하기도하고 지난주 흘러간 예능을 보기도 하고 친구와 메신저를 하기도 하고...

책을 들고 있는 내가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질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공간을 함께 채우고 있었다.


뉴스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메신저를 하거나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서 

스마트폰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무의미한, 단순히 시간을 버리는 일이야!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고민하고 토론하면 내가 사는 이 사회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1월 중순...

페이스북을 보다가 추천되는 페이지에 "책 읽는 지하철" 페이지가 떴다.

관심있는 출판사나 책에 관련된 페이지는 왠만하면 "좋아요" 하는 편인데다

"책 읽는 지하철" 이라는 뭔가 입맛이 확 당기는 제목이었기 때문에 해당 페이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페이스북 "책 읽는 지하철" 페이지 


페이지에 방문 해서 무슨 내용인가 훑어보고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 제목만 보고는 "지하철에서 책을 전문적으로 파는 출판산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일종의 플래쉬몹 (Flash Mob : 플래시 몹이란?)을 하고자 만들어진 페이지였던 것이다.



아... 내 생각과 바람이 드디어 이뤄질 수 있는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독서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란 말이란 말이냐!!!!!!! 

게다가 지하철에서의 플래시몹이라니!!!!!

누군지 몰라도 어마어마한 기획을 한 것이 틀림없다.



(독서 관련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지하철에 팬티만 입고 탑승하는 플래시몹이 12년째 이어져 오고 있고

지금은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16개국에서 이와 같은 플래시 몹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에 부산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책 읽는 플래시몹이 이슈가 된다면 노팬츠데이 보다 더 획기적이고 바람직한 사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흐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런 흐름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1월 19일 행사에 참석한다는 버튼을 눌렀다.


(글 쓰며 생각해보니... 다른 나라에서 이 같은 행사가 없는건... 그 나라는 이미 많은 사람이 지하철내에서 

책을 읽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위 사진에서만 봐도 9명의 등장인물 중 4명이 책을 읽고 있으니...)


토요일 늦잠자는 또다른 자아를 억지로 깨워서 준비를 하고 모임 장소인 홍대 카톨릭 청년회관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읽을 책과 기증할 책 각각 1권씩을 들고...



2013년 1월 19일 오전 9시 50분.

모임 장소인 홍대 카톨릭 청년회관 앞에 도착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만 보던 포스터가 문 앞에 붙어있었다.

"책 읽는 지하철 탑승객을 모집합니다." 라는 문구가 굉장히 재미있게 보인다.



또 다른 디자인의 포스터.

엘레베이터 바로 옆에 붙어 있던 포스터여서 그런지 화살표만 그려져 있다.

꾸깃꾸깃한 포스터 느낌은 일부러 준 거겠지??



2013년 1월 19일.

책 읽는 지하철 탑승권을 티켓팅했다.




엘레베이터에 내려서 출석체크를 하고 invitation 책갈피를 받고 사진도 뻘쭘하게 찍고 자리에 앉았다.

모든 모임이 그렇지만 10시가 됐음에도 사람들이 많이 도착하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종이재질로 만든 책갈피.... 맘에 든다 ^^


잠깐 설명을 하고 넘어갈 게 있는데 "부기" 라는 캐릭터다.

"Book metro" 이루고 있는 글자 중 앞에 BOOK 에 해당하는 것이 "부기" 이다.

(더 자세한 건 PT에서 알려줬는데.. 잊어버렸다. 책벌레가 부정적인 이미지여서.... 그랬다는거로 기억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부기" 에게는 표정이 없다.

독자가 책을 읽고 (너무나 그리기 쉬운) 부기를 그려넣고 자기의 감정을 부기의 표정으로 표현하면 된다.

일종의 별점이라고 하면 될까?

굉장히 맘에 드는 그리고 정감가는 캐릭터다.





오전 10시 10분.

팟캐스트 "책읽는라디오" DJ 한지훈님의 사회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역시 DJ라 그러신지 목소리가 아주 녹는다 녹아... 사랑할 뻔 했다.. ㅋㅋ 부러운 목소리의 소유자.

책 읽는 지하철의 의미와 부기에 대한 설명 등등등 에 대한 PT가 약 15분간 이어지고 나서 

출판사에서 기증한 책을 참가한 모든 분들께 선물로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니... 공짜 행사인데 책과 다과까지 마련한..... 이들은..... 부자??? ㅋㅋ)



어렵게 고른 "청춘의 고전"...

협찬해주신 "알렙출판사" 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부분까지의 감상평은 "굉장히 잼있다!" 로 별점 3개반 드린다^^

 


조설정(난 1조)과 행동방침 듣기 등을 마무리하고 11시에 출발장소인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행사의 루트는 오전 11시 15분 사당방면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하차하는 루트로 진행되었다.

(검색한 바) 전세계 지하철 중 3곳만 가지고 있는 순환선.

순환선의 장점은 출발점이 종착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장점때문에 책 읽는 지하철의 행사도 더 잼있게 진행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약 60여명의 사람들이 1호차에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에 괜시리 웃음이 났다.

60여명의 사람들과 만들어 낼 재미있고도 의미있는 움직임에 흥분되고 설레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하철에 탑승하는 것으로 약 1시간 30분 가량의 책 읽는 지하철의 행사가 시작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하철에 탑승하자마자 모두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하철의 쇠바퀴가 철길과 스치는 소리와 다음역 안내방송 소리만 들릴 뿐 다른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얼마 안있다가 여중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둘이 차에 탔다.


A : "어...어.. 이거 왜이래???"

B : "뭐야! 다 책 보자나.. 무슨 시험보나??"

A : "야 어디 CCTV 있는거 아냐??"

B : "아 완전 뻘쭘해"


보통은 핸드폰하고 있는데 왜 이러는거냐고 의구심을 품는 학생...

이런 모습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풍경이 되어 버린 것일까???



또 다른 곳에서 탑승한 승무원처럼 보이는 아가씨...

지하철을 한 번 무심히 둘러보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길지 않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빈 자리에 앉았다.

우리 조에 속한 아가씨가 그 분께 책갈피와 함께 책을 건네 주었다.

책을 받은 아가씨는 그렇게 앉아서 책을 보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종종 책갈피를 꺼내서 유심히 살피면서....



또 다른 역에서 꼬마학생이 탔다...

손에는 학습만화책이 들려있었다.(말이 학습만화지 게임만화였던걸로 기억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책을 피고 읽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와 처음부터 함께 했던 것 처럼....


  


책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증샷도 중요하다!!!



1조조장 찬희씨와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떠나신 여성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도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역시 같은 1조 였던 진형씨와 여자친구분^^

FC서울 팬인 것 같은 진형씨 앞으로 계속 연락했으면 하네요^^


  


계속 되는 인증샷놀이



시간이 흘러 종착역인 시청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방금 타고 온 지하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내린 빈자리엔 다른 사람들이 앉고

어김없이 누구는 핸드폰을 보고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눈을 붙혔다.

그리고 지하철 문이 닫히고 역을 출발했다.

뭔지 모를 이상한 기분...


오늘 만났던 여중생들, 승무원처럼 보이는 아가씨, 우리와 처음부터 함께 했던 것 같았던 꼬마학생...

그 사람들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이런 작은 움직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으로 다가가길...

뻘쭘해 했던 여중생들이 다음에는 뻘쭘하지 않게 되길...

지하철에서도 아니 그 어느곳에서도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어색한 풍경이 되지 않길 바란다.



시청역에 도착하여 간단히 사진촬영을 하고 조원들과 함께 근처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누었다.

같은 취미를,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금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만과 편견 덕분에 편견만 쌓이고, 보통의 책은 보통이 아니라는 나의 드립도 받아주는 너그러움 까지 ㅋㅋㅋ


특히나 이런 모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들 반가운 눈치였다.

책 읽는 버스, 책 읽는 기차, 책 읽는 비행기 처럼 이동하는 간에는 언제든 행사가 발생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이미 대구(?)에서는 책 읽는 버스를 해보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왔다고도 한다.

이미 물결이 시작된 건 아닐까???


나 역시 이 행사를 통해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중 하나가 책 읽는 자전거....

날을 잡아 한강 고수부지로 모두들 자전거를 타고 모인다.

물론 책과 돗자리를 가지고...

그렇게 모여서 잔디밭에 누워서 다같이 책을 읽고 한 두시간 후 유유히 돌아가는거...

육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함께 챙길 수 있는 ㅋㅋㅋㅋ

왠지 이 행사 욕심난다 ㅋㅋㅋ


여하튼 이렇게 해서 책 읽는 지하철의 행사가 모두 끝이 났다. 

좋은 경험도 했고 좋은 사람도 만났다.


앞으로 매달 열린다고 하니 다음달엔 내가 아는 사람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해보고 싶다.

이런 좋은 경험을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너무 이기적이자나^^


마지막으로 좋은 행사 주최해주고 다양한 준비 하느라 고생하셨을 모든 스테프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여러분의 고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 갔을 것입니다.

조금의 힘도 보태드리지 못하고 즐기고만 가서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앞으로 제가 힘을 보탤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 때 이번에 못한 것까지 더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후기: 책갈피에 부기를 그려달라고 한 메세지가 날아왔다....


"지하철에서 읽은 책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책갈피 부기에게 어떤 표정을 그려주셨는지 궁금하네요^^

책과 책갈피를 함께 찍어서 표정의 이유와 함께 올려주세요"


그래서 올린다!




책 제목 : 청춘의 고전 

부기표정 : 위와 같음 ㅋㅋㅋ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어떤 책을 읽어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근데 이 책... 잼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 두 개(영화 + 책)를 놓고 이야기 해서 그런것 같다.

약 1시간 30분동안 100페이지 가량 읽었는데 상당히 즐겁고 편하게 봤다.

이러한데 달리 어떤 표정을 줄 수 있겠는가???

부기 넌 웃어라!!!!


Fin.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