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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축구희노애락

쌍용더비. 오늘 또 하나의 스토리가 쓰여졌다.

이청용과 기성용.

데뷔하자마자 FC서울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가 되었고 쌍용하면 K리그를 대표하는 듀오로 자리매김했다. 이청용은 독보이는 축구센스로 그라운드를 휘졌고 다녔고 기성용은 정확한 패스로 전방에 패스를 뿌려줬다.

이 둘이 함께 했을 때 FC서울이 우승을 한 적은 없지만 그 때만큼 축구가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영원할 것 같았던 쌍용의 시대는 2009년 이청용이 프리미어리그 볼턴원더러스로 이적하면서 일시정지 됐다. 누가 듀오 아니랄까봐 같은해 기성용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전통의 명문 셀틱으로 이적한다. 이청용과 기성용이 FC서울에서 남긴 기록은 78경기 12골 20도움과 93경기 9골 13도움이었다.

앞에서 쌍용의 시대가 끝난게 아니라 일시정지 되었다고 표현한 건 이 두 사람의 FC서울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이청용은 사실상 FC서울이 키운 선수였기 때문에 K리그로 복귀한다면 당연히 FC서울일 거라 다들 생각하고 있었고, 기성용은 해외 진출 이후에도 '돈 많이 벌고 FC서울로 갈게요' 라며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해외 진출은 이뤄냈지만 이청용은 3곳의 클럽을 기성용은 5곳의 클럽을 옮겨다니며 순탄치 않은 생활을 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물론 이청용은 볼턴원더러스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울 수 있었지만 톰밀러... 개깨끼.... 

이청용과 기성용 모두 어느새 외국에서 10년 이상 뛴 베테랑 선수가 되었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고향인 K리그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FC서울 팬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물론 나 역시도 김치국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마침 FC서울 성적이 바닥으로 쳐박혀 있었기 때문에 그 기대는 더할 나위 없이 컸다. 이청용이 경기장을 휘젓고 기성용이 킬패스를 뿌려주고 박주영이 골로 마무리하는 그런 아름다운 경기를 머리속에 그렸다.

하지만 설레발은 뭐다? 필패다. 난대 없이 기성용의 전북링크설이 흘러나왔다. 응??? 심지어 계약서에 싸인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ㅇ,.ㅇ 콧대 높으신 FC서울 나으리들이 기성용의 자존심에 뭔가 스크라치를 내셨던 것 같다. (자세한 사가를 여기서 이야기 할 건 아니니니 스킵하고.) 멘붕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 강한 어퍼컷이 날아왔다. 

'이청용 울산 현대로 K리그 복귀'. 영원한 FC서울 선수일꺼라 생각했던 이청용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이청용에 대한 사가는 따로 알려진게 없으나 FC서울과의 우선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것만 봐도 대충 감 온다. 울산의 옷을 입은 이청용은 '어나더클래스'를 매 경기 시전하며 K리그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FC서울의 레전드가 될 선수를 영입하지 않은 구단은 이청용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출처:한겨례>

이청용이 성공적으로 K리그에 적응하고 있을 때 쯤 기성용의 FC서울 복귀 뉴스가 나왔다. 누가봐도 FC서울 구단이 팬들의 등쌀에 못이겨 어거지로 한 영입. FC서울 프런트 나으리만 아니었어도 전북에서 행복 축구 하고 있을텐데... 

쌍용은 K리그로 돌아왔지만 쌍용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리고 신의 장난인지 기성용의 K리그 복귀 경기는 8월 30일 울산현대와 경기로 결정되었다. 2009년 7월 19일 강원과의 원정경기 이후 11년만에 K리그 무대에서 쌍용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언론에서는 쌍용더비라는 말도 안되는 더비를 붙이며 두 선수를 주목했다. (제발 더비의 의미나 알고 쓰자)

두 선수가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거면 이렇게 해야한다. 

이청용과 기성용 둘 다 골을 넣고 (혹은 골을 못넣고) 무승부로 비긴다. 둘은 그라운드에서 서로 포옹하며 밝은 미소로 이야기를 나눈다. 프레스룸에 나란히 앉아서 기자들의 틀에 박힌 질문을 받는다.

 

<출처:news1>

하지만 2020년 8월 30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경기는 K리그 스타일로 쓰여졌다.
시작은 아름답게 시작했다. 

<출처: 스포츠동아>

비록 서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둘은 결국 K리그에서 다시 만났다. 선수 생활의 끝을 자신들이 축구를 시작한 곳에서 마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통했다. K리그에 쌍용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내 스토리는 새드스토리로 진행한다.  

전반 18분 이청용이 FC서울을 상대로 시즌 4호골을 신고한다. K리그 복귀 후 FC서울을 상대로 첫 득점. 득점 이후 특별한 세레머니를 하지 않아 친정팀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맘 같아선 그냥 대 놓고 세레머니를 해줬으면 했는데... 그래야 FC서울 프런트 나으리들 배가 좀 아플텐데

이청용, 친정팀에 비수를 꽂다.

스토리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후반 20분, 기성용이 3935일만에 K리그 잔디를 밟는다. (어거지로 만들어 낸) 쌍용더비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 기성용이 그라운드를 밟았을 때 별 기대를 하진 않았다. 경기는 이미 2:0으로 기울었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나온다고 해서 전세가 뒤집어질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기대한 건 경기를 뒤집을 순 없겠지만 기성용이 득점을 해서 쌍용더비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출처: 뉴스1>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FC서울은 3:0 완패를 했다. 이청용은 득점을 했고 기성용은 '기라드' 라는 별명답게 기가 막힌 패스를 선보이긴 했으나 득점을 하진 못했다. 울산 현대를 상대로 승리를 할거라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해서 분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팀을 상대로 득점을 했다는게 속상하고 화가 났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구단에게 화가났다.

<출처: 연합뉴스>

경기가 끝나고 울산 문수구장에서 FC서울 동창회가 열렸다. 울산에는 유달리 FC서울 출신 선수가 많다. 이청용을 비롯해서 고명진, 신진호, 김태환 그리고 상주 상무의 박용우까지. 팀의 핵심자원이 모두 FC서울 출신이다. 그렇기에 경기가 끝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게 결코 어색하지 않다. 

 그 중 어렸을 때부터 FC서울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고요한, 박주영, 기성용, 고명진, 이청용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실로 오랜만에 쌍고와 쌍용이 한 프레임안에 담겼다. 모두 FC서울의 미래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평가받던 선수들이었다. 그 중 반은 FC서울에 남았고 그 중 반은 다른 팀의 선수가 되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 

이청용의 인터뷰면 대충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이청용은 “20대 초반과 지금을 비교하면 서로 역할이 다르다. 내가 해외 있을 때도 우리나라 대표팀 선배들을 보면 한국 축구에 기여한 선수들이 나이 들고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보여서 안타까웠다”면서 “이제 우리 축구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 있는 발언을 했다.

이청용은 “물론 사람이 내려올 시기가 분명히 있다”면서 “항상 좋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나이 들고 하면 예전 기대 만큼 못 보여줄 때가 많은데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한국이 지금 당장의 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고 기량이 떨어지면 ‘이제 저 선수 끝났구나’라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그런 축구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오늘 만난 선수들도 대표팀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 지금보다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출처: 스포츠조선>

이제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겠지?

2020년 8월 30일. K리그에는 쌍용더비라는 새로운 스토리가 하나가 더 늘었다. 그리고 나에겐 이청용이 FC서울을 상대로 골을 넣은 슬픈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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