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세상을 떠날 때 모든 것을 내어주고 간다. 육신은 고기로 내주고 머리는 제를 지낼 때 데코레이션용으로 내어준다. 내장 또한 하나 버릴게 없어 작은창자는 곱창을 해먹고 간은 순대의 사이드메뉴로 먹는다.
여기까지만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저리가라 할 정돈데 돼지껍데기 이야기가 빠졌다.
말이 좋아 '돼지껍데기'지 돼지피부, 돼지살갗이 아닌가?
고기를 먹는걸로 부족해서 사람들은 돼지의 살갗까지 야무지게 해체하여 먹어 제낀다.
자기가 싼 똥에 뒹굴거리는 돼지는 더럽다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돼지 껍데기는 잘도 먹는다. 또, '돼지 같이 생겼다'는 말에는 화를 내면서 돼지껍데기에 콜라겐이라는 성분이 풍부해서 미용에 좋다고 먹는 사람들도 있다는게 아이러니 하다.
돼지껍데기를 먹을 때면 가끔 핑크색돌기를 볼 수가 있다. 그럴때면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녀석은 암컷이었을까 수컷이었을까? 이 돌기로 새끼에게 젖을 물렸을까?'
하지만 이내 생각은 허공에 흩어지고 맛있게 껍데기를 씹어 삼킨다. 인간이란 이리도 냉철하고 잔인한 족속이다.
하지만 보라빛 도장이 박힌 껍데기를 만나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삶에 더 가까운 건 '핑크색돌기' 일텐데 오히려 보라빛 도장에 더 큰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생긴다. 아마도 도장이 죽음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좁디 좁은 우리에서 먹고 싸고 뒹굴다가 어느 날 트럭에 실려 도살장으로 끌려가 날카롭고 차가운 칼을 받은 돼지는 어느 날 저녁 뜨거운 불판 위에 올라와 내 젓가락을 기다린다.
-100일 동안 글쓰기 여든한번째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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