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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2013년 하계여행] 뚜르드 동해안 Stage 3

사진을 대량 포함하고 있는 포스팅입니다. 용량의 압박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뚜르드동해안 3일차 일정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버거웠다. 2일차 기상과는 다른 몸상태. 아무래도 이틀 연속 120km 넘게 자전거를 타고 왔으니 힘들 수 밖에... 그래도 다행인 건 지도 상으로 3일차/4일차 동안 가야 하는 거리가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다. 힘내자!!!


조용조용 모텔을 빠져나와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밤에는 보지 못한 놀라운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고래 꼬리 지느러미!!!!!!!

고래성애자인 나에게 이런 조형물은 위험하다고!!! ㅋㅋㅋ 여튼... 호미곶에서 일출을 맞이 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날은 밝았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상황.. 거리상으로는 30분안으로 도착 할 수 있다. 그러면 일출을 처음부터 보지는 못해도 꽤 근사한 풍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아무리 급한 길이라도 이런 신기한 곳을 그냥 지나쳐 갈 수 있나??? [빙혈] 얼음의 혈이라니....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전거를 길 한켠에 세워두고 더 가까이 가봤다.


▲ 더위에 지친 개구리가 빙혈로 들어간다.

엄청 시원한 바람!!!!!! 막 엄청난 바람이 나오는 건 아니고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의 느낌??? 아... 이래서 [빙혈]이라고 하는구나!
도대체 어디서 이런 시원한 바람이 시작되는걸까??!!!! 

바로 이런 것이 도보/자전거 여행의 매력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표지판을 그냥 지나쳐 갈 수도 있을 뻔 했을 곳인데 이렇게 체험하고 지나갈 수 있는 매력. 


시원한 자연의 바람으로 땀 좀 식혔다 했는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오르막길의 시작. 그래... 이 오르막만 넘어가면 호미곶까지는 금방이겠지.



이미 해는 떴는데 아무리가도 계속 오르막이다. 젠장.... 뭐야 이거!!!! 산을 올라가야 할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ㅠㅠ 그래... 이것만 넘어가면 되겠지... 그래도 경사가 그렇게 심하진 않으니까... 주변 풍경이 너무 이쁘니까... 힘내서 넘어가자... #정줄놓은이의 희망고문


지평선을 수놓고 있는 포스코 공단의 모습. 규모가 어마어마하구나. 어제 본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근데 더 놀라운 건 꽤 많은 시간을 달려왔는데 아직도 포스코 공단이 보인다는 거. 이 얘기는...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거 ㅠㅠ OTL


▲ 날아가는 새 순간 포착!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길은 계속 산으로 올라갔다. 계속 높이,높이...  일출을 보려고 했던 나의 목표는 이미 저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근데 이 길 드라이브 코스 혹은 도보여행코스로 꼭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울창한 숲과 바람 햇빛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 이 길의 풍경 덕분에 끝이 보이지 않던 오르막길을 즐겁게 오를 수 있었다. (다음에 꼭 차 끌고 와야지!!!)


여차저차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출발선이 있으면 도착선도 있는 법.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르막길이 끝나고 신나는 내리막 길이 날 맞이 했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 째진다! #자전거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


출발 2시간 후, 드디어 (해가 거의 중천에 떠오른) 호미곶에 도착했다.. 


원기옥을 뿜어내는 듯한 포스의 조형물이 멋스럽게 서있는 이 곳은 바로 호.미.곶.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며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더 쉬운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호미곶을 지나는 루트를 짠 이유는 호랑이 꼬리에 가보고 싶어서였다. 동해부터 포항까지 호랑이의 등줄기를 만지며 내려왔는데 꼬리를 안 만져 본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암~~~~

(호미곶에 대한 정보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0&contents_id=5644 참조)


▲ 해가 지는 것 같지만 이곳은 동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길 한켠에 데크가 마련되어 있어서 가봤다.


길 중앙에서 맞이한 문어조형물. 근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데비...존스????  잭 스패로우를 찾아 오셨나????



해 뜨는 곳. 바로 이 곳에서 해가 뜨는 것을 정동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인거 같은데??? 근데 여기서 서울까지 284km 밖에 안된다고???? 부산이 109km??? 뭔가 이상하다. 


해가 뜨는 곳이 어디냐면 저기에요~~~


아마 이 아이 동상이 가르키는 곳이 해가 뜨는 곳일터. 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만 아니라면 더 좋았을텐데.


언제나 마찬가지로 동해바다는 참 힘이 넘친다. 웅장한 파도소리,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와 수평선. 그리고 하루의 정기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 어느덧 동해 예찬론자가 되어 버렸다.


▲ 호미곶의 명물 상생의 손


데크 뒤로 호미곶 해맞이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볼게 많아 보이니 그만 자리를 옮겨볼까???


공원 입구에 든든하게 서있는 호랑이 조형물.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한마리 호랑이를 닮았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근데 꼬리가 너무 짧아. 길게 좀 뽑아주시지...



   

공원 입구 중앙에는 일출 불씨와 함께 또 다른 상생의 손이 위치하고 있다. 1999년 12월 31일과 2000년 1월 1일 각각 다른 곳에서 햇빛을 채화해 온 것인데 나름 그 의미가 뜻 깊다. 피지섬은 잘 모르겠지만 변산반도에서 채화해온 일몰 불씨와 호미곶의 일출 불씨는 꽤 인상깊게 다가왔다. 시작과 끝의 만남이라.... 지금도 계속 불길이 살아 있다.



아까 보았던 불씨를 채화한 채화기의 모습도 보인다. 그냥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면 되는게 아니구나!!! 타임머신처럼 보이기도 하고, 만화에서 보는 무슨무슨 레이져빔 쏘는 기계 같기도 하다.


해맞이 공원 구석구석 볼 것들이 많다. 

포항 여기저기에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에 대한 조형물이 있던데 사실 이거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 설화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무리일려나???


공원 끝에 위치한 거대거대한 새천년 기념관. 꼭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업무시간 전이라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꽤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아쉬움을 남겨둬야 다음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지.... 는 무슨... 못보고 온게 아쉬울 뿐이다. 


명색이 공원인데 녹지는 없고 온통 보도블럭 뿐이다. 가운데에 넓직한 잔디밭이 있으면 훨씬 아름다운 공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잔디밭에 누워 동해의 햇살 정기를 받으며 유유자적하면 얼마나 여유로울까??? 어디 앉을 곳도 하나 없어 이 멋진 광경을 스쳐지나가듯 봐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상생의 손은 그 이름 그대로 상생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갈매기의 쉼터.


바다바람에 몸을 맡겨 날다가 지치면 언제든 와서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는 상생의 손. 그 모습이 마치 손톱이 자란것 처럼 보인다. 어찌 저렇게 같은 곳을 보고 쪼르르 앉았을까?


호미곶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하지만 호미곶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별 거 없는데 상생의 손? 해맞이 공원? 이게 단데 뭐가 그리 좋아서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걸까? 한참동안 이 자리에 서서 호미곶을 바라보았다.


다시 울산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자동차가 많은 도로를 달리게 되어서 더 긴장하고 페달을 밟는다. 그래서 그런지 산길, 바닷길을 달릴 때 보다 더 빨리 지치는 기분이다.


길 중간중간 쉬어가는 데 이런 멋진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다리.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풍경에 녹아들어가 있다. 저 다리를 건너보고 싶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구룡포에 도착했다. 바다에서 10마리 용이 하늘로 승천하려다 1마리가 떨어졌다는 전설이 있는 마을. 마을을 둘러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룡포는 과거 일제식민지시대 당시 동해 어업을 점령한 침탈 현장이다. 바다가 비옥해서 일본의 침탈이 더욱 심했을 듯... 그런 과거의 역사로 인해 구룡포에는 일본인이 거주했던 가옥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가옥을 모아놓은 곳이 바로 [근대문화역사의 거리] 아직도 내 나이 또래에서 전설로 남아 있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를 바로 이곳에서 촬영했다.


[일본인 가옥거리] 라고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사실 볼 건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옛 가옥을 남겨서 후손들에게 아픈 역사를 알려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감흥도 없는 거리를 만들바에는 차라리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이라면 오히려 일본관광객들이 방문해서 그 당시 영화를 느끼며 좋아 하지 않을까?????


구룡포 근대문화역사의 거리에 위치한 [구룡포공원]. 이 공원에서 재미있고 조금은 통쾌한 역사를 마주칠수 있다.


공원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돌계단을 올라가야 되는데 특이하게 계단 양 끝단에 돌기둥이 세워져있다.

이 모습이 꽤나 인상 깊은데 돌기둥마다 한문으로 글씨가 씌여져 있다. 이 돌기둥에는 꽤나 아픔 우리민족의 근대사가 담겨있다.


과거 돌기둥에는 일제 식민지 당시 구룡포 조성에 도움을 준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뭐 공로패 같은 의미로 세워놓은 거겠지??? 하지만 해방 이후 마을 청년들이 일본인들의 이름이 써진 곳에 시멘트를 발라 버렸고 돌기둥 전부를 반대로 돌려버렸다고 한다. 얼마나 꼴보기 싫었을까.. 자신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던 사람들의 이름이 버젓이 새겨져 있는 돌기둥을 보면서... 그러다 후에 충혼탑을 세우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시멘트로 발라버린 돌기둥


이 시멘트를 바르기까지 우리네 조상님들은 36년간을 참고 견뎌내야했다. 그것도 일본인은 해하지 못하고 기껏 한 게 돌기둥에 시멘트를 발랐던 여리디 여린 선조들. 누구는 울면서 누구는 화를 내며 시멘트를 발랐겠지. 


▲ 지금은 구룡포공원 충혼탑 건립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돌기둥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지며 구룡포공원을 오른다. 과거와 현재와의 조우. 이렇게 만지면 그 시대의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 새겨졌던 그리고 덮혀버린 일본인... 다시 새겨진 한국인의 이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


적지않은 돌계단을 오르면 구룡포항의 풍광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 이곳이 한 때 동해 자원 침탈의 본거지였다니... 전혀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저 힘없고 약소했던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온갖 모진 압제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았던 우리 민초들이 자랑스럽다.


공원 한켠에 흉물스럽게 놓여져있던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 이 송덕비도 해방 이후 대한청년단에 의해서 시멘트가 부어졌다.

시원하고 통쾌하며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 근데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본 포스팅을 하기 위한 자료 조사를 하다가 발견했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의 중심부에는 구룡포공원이 있다. 공원에 서면 구룡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원래 일본인이 세운 신사와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가 있던 곳이다.  해방 이후 구룡포 청년들로 구성된 대한청년단 30여 명은 신사를 부수고 송덕비에는 시멘트를 부었다.  당시 대한청년단원이었던 서상호옹은 “일제강점기에 친구는 군대로 징집되고 마을 처녀들은 정신대 끌려갔어. 해방되고 일본사람이 다 떠나간 그해 가을에, 우리는 ‘왜색일소’를 외치면서 신사를 해체하고 송덕비에 새겨진 도가와 비문에 시멘트를 부은 거야”라고 설명했다.


현재 구룡포공원에는 대한민국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졌다. 그러나 최근 마을에는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를 다시 복원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민족에게는 ‘침탈의 역사’가 일본인에게는 ‘번영의 역사’로 비칠지 모른다. 


네이버 캐스트 [소읍기행] 포항 구룡포 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1&contents_id=2755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송덕비를 복원하자라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도대체 누구의 땅이고 누구를 위한 나라란 말인가? 일년에 많아야 10만명이 올까 말까한 이곳에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일제 잔재를 복원하자고? 


결국 내 우려가 맞았다. 구룡포 근대문화의 거리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을 위한 문화재다... 그들이 부귀영화를 누렸던 그 때를 추억할 수 있게.... ㅆㅂ....(글을 쓰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포항에 왔으니 물회를 안먹고 그냥 지나갈 수 있나!!!


대충 이 곳이 맛집이겠거니 생각하고 [물회전문] 이라고 씌여진 간판의 가게로 들어갔다. 상이 나오는 거는 사진으로 보듯이 이 정도. 근데 맛은 장난 없다. 


시원하게 갈아넣은 얼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매콤시큼한 국물에 아그작 씹히는 생선의 질감... 반찬은 왜 그리 맛있으며 같이 나온 매운탕은 또 어찌나 얼큰 시원하던지...ㅠㅠ 아직도 그 맛이 혀 끝에서 맴돈다. 이래서 원조원조하나부다 .물론 내가 들렀던 곳이 물회 원조가게는 아니었다.


맛있는 물회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 돌산?? 뭐라 표현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돌틈새에서 자라난 나무가 멋지구나...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의 동해바다.  유난히 푸른 하늘로 인해서 바다가 더더욱 파랗게 보인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하얀 구름. 해안선을 따라 구름이 줄지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길을 맑은 날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풍력발전을 위한 바람개비가 우뚝 솟아 있다. 이런 모습들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부산에서 만날 미니미니에게 보여주기 위해 잠시 자전거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바다를 달리다 보니 어느덧 포항의 끝에 도착했다. 동해 고속버스터미널를 출발한지 3일차.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 그 끝을 조금씩 보여주고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더욱 힘이 났다.


안녕 포항~~~!!!


포항 경계선을 넘어오면 바로 경주시 감포읍이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금관모양의 상징. 역시 역사의 경주라는 건가?? 더더욱 기대가 되는 남은 3일차 일정이다.


▲ 이제는 포항시가 아니라 경주시


포항을 지나고 나니 울산이 겨우 48km 남았다. 빨리 가면 약 2시간 30분안에 울산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그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더더욱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다. 가자 울산이다!!!!


▲ 울창한 소나무 터널.


길가에 놓여져 있던 팬션 간판. 그 이름이 신기하고 반가워서 한 장 찍었다.  [몰리나 팬션]... 몰리나 이 녀석 팬션 장사까지 하는거니!!!!!


여행자들의 쉼터인 정자에서 다시 만난 해파랑길. 도대체 어디 있다가 온거니?? 거참... 조금 더 자세한 안내문이 있다면 좋을 거 같은데 살짝 아쉽다. 


지금까지 들어본 이름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꼽아도 부족할 것 없는 [해파랑길] 도보 여행객/자전거 여행객을 위해 조금만 더 자세한 안내문이 위치하길 소원해본다.


▲ 대형 모니터를 보는 듯한 느낌 

잊을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정자. 이곳에서 짧지않은 시간을 앉아서 동해바다의 풍경을 바라봤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이 곳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적의 위치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이 곳을 지나가게 된다면 꼭 정자에 올라 시원한 바람과 동해바다의 멋진 경치를 만끽하고 오시길...


마침 카메라를 올려놓을 만한 곳이 있어서 타이머를 눌러놓고 셀카를 시도했다.

누군가 찍어주는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의 사진.


계속 페달을 밟다가 강한 색상의 안내도가 눈에 들어왔다.  여타의 안내도와는 다르게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느낌의 안내도.

감포깍지길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뭔 길이 이리 많은거야!!! 여하튼.. 안내도를 자세히 보니 근처에 대왕암이 위치해 있는것을 확인했다. 오호!!!! 오래전에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와 봤던 대왕암... 그곳을 다시 가보게 되다니..


대왕암을 가보기 전에 먼저 지나쳐왔던 이견대에 가보기로 했다. 안내도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 전에 큰 사당같은 건물을 지나왔는데 그게 이견대였다니. 다행히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많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 이견대에서 바라본 대왕암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견대. 이견대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면 대왕암이 눈에 들어온다. 주춧돌만 남아있던 터에 신라 건축 양식을 추정하여 새로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정자를 오르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데 밴발에 느껴지는 나무의 느낌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사람들만 없었어도 대(大)자로 누워 낮잠을 청하고 싶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정자를 돌아나간다. 아쉽게도 사람들이 단체로 방문하는 바람에 왁자지껄해져서 서둘러 이견대를 빠져나왔다.


이견대를 떠나 대왕암으로 가려는 길에 [감은사지] 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감은사지] 굉장히 익숙한 이름의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절은 없고 쌍탑만 남아있다는 그 곳.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지 몰라 함부로 갈 수가 없었다. 10km 가 떨어져있다고 해도 왕복으로 20km 를 더 움직여야 되고 시간상으로는 1시간을 더 이동해야 하는 부담.


근처에서 일을 보시던 분이 계셔서 여쭤봤다. [감은사지가 얼마나 멀어요?], [바로 이 옆이에요!!!!] 오호호호홍 다행이다!!! 바로 옆이라니. 주저할 것도 없이 자전거를 감은사지로 틀었다.


아저씨가 알려주신대로 정말 바로 옆에 위치해 있던 감은사지터. 자전거로 3분 걸렸다. 이렇게 가까운 곳인데 그냥 지나쳐갔으면 얼마나 아쉬울웠을까?


감은사지터 앞에 펼쳐진 들녘에는 곡식들로 가득했다. 전신주만 없으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을 뻔 했는데. 산으로 둘러쌓인 이 곳은 아늑한 느낌을 준다.


▲ 감은사지 쌍탑


이견대에서 봤던 [만파식적 설화]와 [처용이야기]가 고맙게도 보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해 놓은 안내판. 역사지식이 미천함이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시간이 허락되면 석굴암도 가보고 불국사도 가볼텐데... 아쉬움이 남아야 다시 돌아온다고 저 곳들은 다음에 여유롭게 둘러보기로 하자. 





감은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 

감은사라는 이름은 부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신문왕 때 완공된 절이다. (감은사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 남도답사 일번지]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용이 된 부왕이 드나들게끔 금당 밑을 특이한 구조로 된 공간을 만들었다]는 부분이다. 보통은 바닥에서부터 기초를 다지고 건물을 올리는게 기본인데 용이 지나다닐수 있게 공간을 만들었다니...


▲ 감은사 쌍탑


여행자안내소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감은사 쌍탑이 여행객을 반겨준다. 보기에도 그 크기가 대단한 대형 석탑. 하지만 탑의 크기에 비해 절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한다.


감은사의 석탑은 우리나라 삼층석탑 중 가장 큰 규모로 총 높이가 13.4m에 이른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는 총 높이가 13m에 이르며 상륜부 철주의 높이 3.9m 를 제외해도 9.1m가 된다고 쓰여있다.) 이런 거대한 석탑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정말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위압감이라는 것이 윽박을 지르거나 겁을 주는 위압감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의 위압감이라 오히려 탑을 보고 있을 수록 탑의 순수함과 정갈함에 마음이 뻇긴다.


탑 바로 뒤 쪽에는 금당이 위치했던 곳의 터가 남아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의하면 [방형대석을 이중으로 놓아 위쪽 대석위에 장대석을 걸쳐놓았고 그 위에 큰 장대석을 직각으로 마치 마루를 깔 듯이 깔고 그 위에 초석을 놓았다.] 고 한다.  음... 사진으로 보아도 뭐가 방형대석이고 뭐가 장대석이지... 하지만 한가지 사진에서 확실히 볼 수 있는 것은 돌 아래 공간을 만들어서 용이 지나가는 자리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충심을 다해 진지하게 지었겠지만 용이 지나가는 자리를 만들다니. 그 마음이 대단하기도 하고 왠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불충한 소리인 것 같은데... 공간을 만든 이유도 그 공간을 직접 보았을 때의 느낌 모두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한참이고 이 자리에 서서 바라보았다.


글을 쓰면서 감은사에 대해 찾아보던 중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용이 지나갈 수 있는 길... 바로 저 공간 전체가 인공 연못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공 연못위에 절을 지었다는 것. 더 놀라운 건... 감은사절 터의 흙 성분을 분석하였더니.... 바로 이 앞까지 바다였다는 것이다... 즉... 인공연못은 바닷물이었다는 것.... 대왕암의 용이 정말로 바다를 타고 이곳을 드나들었던 것이다!!!!!! 

(http://mirror.enha.kr/wiki/%EA%B0%90%EC%9D%80%EC%82%AC 참조)



천년이상을 이 곳에서 지냈으리라. 그 역사를 지금 마주하고 있다는게 벅차오른다. 천년 전 누가 저 계단을 올랐을까??? 무슨 이유로??? 저 돌은 어느 석공이 깎아서 이 곳까지 가져왔을까???  오래된 문화재를 마주할 때 항상 그 당시 문화재와 엮어졌을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역사와의 조우...

 

감은사터 전경.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쌍탑일금당(雙塔一金堂)의 정연한 가람배치 형태의 절터라고 한다. (가람배치에 대한 내용은 http://mahan.wonkwang.ac.kr/culture/2003-3/report/jochanyoung.htm 을 참조) 산과 어우러진 절터가 아름답다.


지금은 터만 남은 곳에 상상으로 절을 지어본다. 절터로 봐서는 크게 지을 수가 없다. 작은 크기의 금당. 이렇게 생각하니 조용하고 작은 암자같은 느낌이 든다.


▲ 이 곳은 무엇이 놓여져있던 곳일까?


감은사지 3층 석탑.

괜한 수식어로 탑의 위엄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 감히 유홍준 교수님의 글을 빌어 탑을 설명하고자 한다.


[감은사를 조영하던 정신은 통일된 새 국가의 건설이라는 힘찬 의지의 반영이었으니 그런 식의 오층석탑은 그들에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장중하고, 엄숙하고 안정되며, 굳센 의지의 탑을 원했던 것이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상승감과 안정감이 동시에 살아나야 한다. 그러나 상승감과 안정감은 서로 배치되는 미감이다. 상승감이 살아나면 안정감이 약해지고, 안정감이 강조되면 상승감이 죽는다 ... 중략 ... 그리고 그 기세는 결코 허세를 부리는 과장된 상승이 아니다. 대지에 굳건히 뿌리내린 팽창된 힘에 유지되어 조금도 흔들림 없는 엄정한 기품이 서려있다. 감은사 삼층석탑 앞에 서면 나는 저 장중한 위세 앞에 주눅이 들어 오금에 힘을 쓸 수가 없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 남도답사일번지 경주(2) 168p~170p 발췌]


그래... 교수님도 이 탑 앞에서는 위세에 눌리는 기분을 느끼시는구나. 정말 그렇다. 감은사지 3층 석탑에는 그런 위압감이 있다.  


▲ 그 옛날 우리네 석공들은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  감은사지 동탑의 모습


사진으로도 느껴지지 않는가? 석탑의 크기가...

(뒤에 해설을 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탑 꼭대기에 꽂혀있는 (찰주라고 하는) 기둥이 피뢰침 역할을 하라고 근래 꽂아둔게 아니란다.

몽매한 나의 지식이여... 


찰주는 탑의 중심을 잡고 상륜부를 장식하는 기둥인데 탑을 더 장업하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감은사 쌍탑의 찰주는 철로 만들어진 찰주인데 저 찰주의 역사도 탑의 역사와 같다고 한다. 철이 녹슬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있다는게 경이로울 뿐이다.


▲ 세월의 온갖 풍파속에서도 용케 버텨주었구나.


▲  감은사지 서탑의 모습


회랑터의 주춧돌에 서본다. 이 곳에 회랑이 있었으렸다. 그 곳을 옛 신라인들이 지나갔으렸다. 이렇게 그때를 느껴본다.


▲ 이 아이는 뭔데 여기에 누워있을까?


감은사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여행자 안내소에 핸드폰 충전을 맡긴 것이었다. 한 30분정도를 보내고 길을 나서기 위해 맡겨놓은 핸드폰을 찾으러 갔다. 그 때 여행자 안내소에 계시던 관광해설사님께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시고 경주문화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대략 30분 정도였나???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설명을 해주시고 어떻게든 쉽게 이해시켜주시려고 하시고... 꽤 많은 문화해설사 분들을 만나봤지만 그렇게 열정적인 해설가분은 본 적이 없다. 안타깝게 그 당시 설명해주셨던 것은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감은사에 대한 설명만큼은 꽤 기억하고 있다. 설명은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었으나 또다른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바람에 나만을 위한 해설은 거기서 접으셔야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나도 함께 감은사해설을 듣고 싶었으나 나에겐 가야할 목적지가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해설사님의 명함을 받고 다음에 경주를 방문하게 되면 꼭 전화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감은사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유홍준 교수님의 말을 빌리고자 한다.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정윤화 경주문화관광해설사님.


그 날 선생님께서 해주신 역사이야기는 제가 지금껏 들었던 역사이야기 중 단연 최고였습니다.

선생님의 열정과 문화재, 경주에 대한 애정은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주를 다녀온지 약 2달이 되어가는대도 메일 한번 드리지 못한 점 죄송스럽습니다.

경주에 방문하면 꼭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 때 더 많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감은사지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문무대왕릉.

대왕릉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가서보면 바다에 돌무더기만 보인다. 실제로 가볼 수 있는 여행 상품이 있으면 좋겠지만 유적지 보호를 위해 이대로 놔두는 것이 더 좋겠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에 이 곳에 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쓰여있어서 자꾸 언급을 하게 되는데  책의 초판이 발행되었을 당시에는 이 곳에 철조망이 쳐져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철조망이 모두 걷혀졌는데 유홍준 교수님도 이제는 감포가도 여정의 종점을 이 곳으로 삼으실 수 있으실 것 같다.


▲ 문무대왕릉의 모습


문무대왕릉의 정기를 받고 있는 로미오.

2011년 제주도 일주부터 이번 뚜르드동해안까지  많은 고난을 잘 버텨주고 있어서 고맙다. 핸들바테입도 교체해주고 기름칠 좀 해줘야 할텐데...


 가까이서 바라본 문무대왕릉.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해중왕릉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진위여부는 아직도 갑론을박중이다. 대왕암에서는 유골함 같은 것이 발견된 적이 없다고 한다. 유골을 뿌렸을 수는 있으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일뿐. 대왕암의 뚜껑을 들어올려 확인해 볼 수도 있으나 신비를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http://mirror.enha.kr/wiki/%EB%AC%B8%EB%AC%B4%EB%8C%80%EC%99%95%EB%A6%89 참조)


더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신비롭게 놔두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문무대왕릉이 정말 왕의 무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확실히 결론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진위를 파악하는 것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된다고 본다. 무턱대고 대왕암 뚜껑을 들었다가 두 번 다시 복원이 안될 수도 있으니까... 역사를 왜곡하거나 재창조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완벽한 복원이 가능하다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그냥 지금처럼 문무대왕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문무대왕릉을 떠나 다시 울산으로 향한다.


그 길에 마주하게 된 봉길터널... 뜬금없이 봉길매직이 생각난다. 터널을 한 두번 지나가본 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썩 내키지가 않는다. 무엇보다 갓길의 너비가 너무 좁다. 절대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터널이 얼마나 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짧은 길이면 차는 좀 불편하겠지만 차도로 빠르게 달려나가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게다가... 울산으로 넘어가는 대형 트럭들이 수시로 지나가는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길 외에는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없다. 가야만했다.

  

역시나 갓길로 달리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승용차들은 날 쉽게 알아보고 속도를 늦춰주거나 살짝 피해가주었지만 대형 트럭의 경우는 날 발견하지 못하는 건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이렇게 가다가 사고가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하고 속도도 많이 느리겠지만 수로를 통해 가기로 했다. 다행히 조금은 안전해졌지만 위험한 건 매한가지.


수로위에 놓여진 뚜껑을 밟고 가다보니 속도를 낼 수 없고 중심을 잃으면 떨어져서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터널이 엄청 길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때 거대한 문을 발견하였다. 아마 비상통로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에서 사고가 나면 대피할 수 있는 비상통로가 있다는 걸 영화를 보고 알았는데 이 문이 비상통로로 가는 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이 곳은 비상통로였다. 다행히 바닥이 잘 닦여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에 적합했다. 시원하게 달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었다. 만약 반대편 출구가 막혀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이 곳에 혹시 위험한 사람이 있었으면 어떻게 했었을까? 단순히 빨리 가야된다는 생각에 다른 위험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출구 쪽에 문이 걸쇠로 잠겨있기는 했었지만 다행히도 자물쇠로 걸어놓지는 않아서 쉽게 문을 열 수 있었다. 터널의 길이는 대략 2~3km 정도... 수로를 타고 왔다면 굉장히 오래 걸렸을 것이다. 비상통로가 굉장히 무섭고 오싹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고 없이 무사히 올 수 있게 해주었다. 터널 비상통로 이용해본 사람... 어디 나와봐!!!! 


▲ 원자력 발전소 덕분에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은 터널을 지나는 길 밖에 없다.


울산으로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는 주상절리. 제주도에서 본 적이 있지만 왠지 [동해안에 있는 유일한 주상절리] 라고 하니 들렀다 가야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울산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조금의 여유는 허락할 수 있었다.

 

▲ 로미오를 찍은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사진




동해안에서 유일한 주상절리하고 해서 포장도 안된 길을 자전거를 끌고 힘들게 왔겄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의 풍광은 제주도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제주도에서는 주상절리가 멀리 떨어져있는 세계의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곳의 것은 집 앞마당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규모는 작지만 친근하다고 해야될까??? 그래서 큰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꽤 좋은 기분으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여행도 막바지로 향해 달려가고 시간도 좀 여유롭고 하니 자전거 사진 찍는 횟수가 많아졌다. 사고 없이 무사히 내 발이 되어준 로미오.

이렇게 빡세게 타는 자전거 종류가 아닌데도 그 흔한 타이어 빵구 한번 안났으니 얼마나 대견한가! 순백의 하얀 자태.... 아~~ 현기증나.


이제 왠만한 여행지에 가면 다 있다는 [느린 우체통]...

뭐가 조금만 유명해지면 다들 개떼처럼 죽자고 달라 붙어서 결국 모두 Die.... 이 느린 우체통도 어디서 처음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너무 흔해서 거추장스러워보이기까지 한다. 좀 색다르고 지역색 물씬 풍기는 그런 아이템은 발굴하지 못하는게요????


다른사람한테 사진 찍어 달라는 부탁을 잘 못하는데 문득 자전거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혼자 외로이 경치를 즐기시던 남성분께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다. 다리가 탄 거 보면 햇빛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자.... 조금만 더 힘내자! 이제 여행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상절리를 나와 조금은 여유롭게 페달을 밟았더니 어느새 [울산] 에 도착했다. 출발 3일만에 도착한 울.산. 계획의 70% 정도가 이루어졌다고 보면 되겠다. 해가 지기 전에 문수구장에 도착해야 되기 때문에 조금 더 힘차게 페달질을 한다. 으쌰! 으쌰! 


근데 이게 왠걸..... 정말 이 길 밖 없는 건가요...ㅠㅠ 여행기간 중 만난 세 번째 어마어마한 경사길... 왜 하필 이런 길을 하루가 끝나가는 시점에 만나게 된걸까??? 몸은 지칠대로 지쳐서 발걸음이 무겁다.


자동차 도로로 가면 금방 갈 수 있는 길인데 자전거라 산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이제 산 정상...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이 길만 내려가면... 3일차 일정의 목적지 울산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르막 경사가 심했으니 내리막경사도 심하겠지..


신나게 달린 후 마시는 몬스터 한 캔!!! 체력이 바닥나는게 느껴져서 타우린 보충!! 2일차에 핫식스 한 캔 먹었던 적은 있었지만 몬스터를 먹기는 이번이 처음...그 만큼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겠지. 그렇기에 저녁에는 꼭 꼬기를 드셔주겠어!!!!!!


산을 넘어오니 [현대특별시]라는 울산에 입성했다.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와보니 신기할 따름... 


울산의 첫인상은 참 깨끗하다였다. 특히나 태화강 주변은 한강보다 더 깨끗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GDP가 높은 동네라는게 틀린 말은 아닌가부다. 최종 목적지인 문수경기장까지 가야되는데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더 빨리 달려야한다. 딱 도착했는데 어두워져서 사진 한 장 못 찍으면 너무 억울하자나~~ 노을빛 머금은 태화강을 옆에 두고 마지막 힘을 짜내 달리기 시작했다. 


▲ 잉? 해파랑길이 여기에도?? 도대체 이 길은 뭐야 정체가!


산 넘고 물 건너 힘들게 힘들게 찾아온 3일차 일정의 최종 목적지 [울산 문수 축구 경기장] 이 곳을 오기 위해 울산을 가로 질러 와야했다. 아 피곤해... [철퇴축구] 라는 애칭으로 K리그를 씹어먹고 있는 울산현대호랑이축구단의 홈구장. 외관의 모습이 대전월드컵경기장과 많이 닮아있다. 온김에 축구도 보면 좋을텐데....



▲ 해는 어느새 산등성이를 넘어 가버렸다.


울산현대의 엠블렘.


경기가 없는 날이어서 그런건지 시간이 늦은건지 경기장 주변이 너무나도 썰렁했다. 축구장 주변으로 마테리얼 샵 같은 걸 운영하면 참 좋을 텐데....(이렇게 컨테이너로 되어 있는 샵 말고)


▲ 절대로 로미오 내팽개친거 아님!


▲ 로미오와 문수구장


이  곳까지 오는데 3일 걸렸다.

동해에서 울산.

진짜로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그 성공 가능성에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다. 이제 남은 일정은 이틀... 더 즐겁게 놀아보자!


사진작가 놀이를 좀 했더니 밤이 찾아왔다. 숙소를 구하러 가면서 발견한 [울산 월드컵 기념관] 다음엔 저 기념관에서 사진 찍으러 오자...


이제 3일차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문수구장에서 부산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지도 상에서 가깝게 느껴져서 숙소를 근처에 잡기로 했다. 숙소 찾아 삼만리. 근데 아무리 찾아도 모텔이나 여인숙의 흔적은 찾아볼 수 가 없었다.  그렇게 문수구장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숙소 찾아 해메기를 20~30여분, 울산대 근처에 모텔촌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아까 산을 내려와서 나에게 했던 약속 [꼭 고기를 먹겠어!!] 그래서 먹었다. 샵겹살을/혼자/그것도 맥주 한 병 시켜놓고...ㅋㅋㅋㅋㅋ 마침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 훔쳐보고 지나간다. 허긴 이게 평범한 일상의 모습은 아니지 ㅋ


그렇게 나의 3일차 만찬은 끝이 났다.


드디어 4일차! 부산에 도착이다. 조금만 더 힘내자! 아직까지 더 달릴 힘이 남아 있자나! 부산에서 나의 이 여행의 끝을 보리라!!!!!


=달려라 내 젊음이여! 느껴라 젊음의 온기를!!!








뚜르드 동해안 3일차 


2013년 9월 2일 오전 5시 59분 ~ 2013년 9월 2일 오후 5시 22분


용궁모텔 - 호미곶 - 구룡포 - 감은사지 터 - 울산 효문동 - 문수 월드컵 경기장


총 이동거리 : 124.65 km

총 이동시간 : 11시간 23분

평균 속도 : 11.73 km/h


사용경비


간식비 (음료수, 초코릿바) : 7,700원

식사비 (점심:물회, 저녁:삽겹살) : 37,000원

숙박비(스크린텔) :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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