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한제국대황제보령망육순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大韓帝國大皇帝 寶齡 望六旬 御極 四十年 稱慶紀念碑)-



1902년. 고종의 나이 51세. 황제로 등극한지 40년이 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


광화문 교보문고 옆 작은 공간에 위치해 있어 쉬이 지나쳐버리는 쓸쓸한 고종칭경기념비전.


이 건축물이 조선 전통양식으로 세운 마지막 작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념비전 앞에 세워진 만세문은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일본인의 집 앞 대문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얼마나 기구한 노릇인가..


다행히 광복 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고는 하나 기념비전의 원래 자리가 세종로 교차로 복판이었다고 하니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는 것도 제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더 서글프고 처량하다.




남쪽 처마에 황태자 순종이 쓴 "기념비전(紀念碑殿)"  편액이 걸려있다.


조선시대에는 건물을 사용하는 주인에 따라 건물의 격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이와 연관이 있는 건물에는 "전(殿)" 을 붙여 건물의 격을 높였다고 한다. 


건물 주위로 담장이 둘러쳐져 있어 그 내부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여 아쉬움이 크지만 


남대문이 불 타 사그러지는 모습을 본 이후 


이렇게라도 옛 건축물들을 보호했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비의 서문을 소개하면,


원구(圜丘, 원구단)에서 천지(天地)에 제사하고 황제의 큰 자리에 올랐으며, 

국호를 대한(大韓)이라 정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했으니, 

실로 단군·기자·신라·고려 4천년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 임인년(1902)은 황제가 등극한 지 40년이 되며 보령(寶齡)은 망육순(望六旬)이 된다. 

이에 백관의 하례를 받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기로소를 수리하고 길일을 택하여 

영수각(靈壽閣, 기로소 안 어첩 봉안처)을 참배하고 친히 기로소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어 

고황제(高皇帝) 이하 세 임금[태조·숙종·영조]의 고사(故事)를 이었다



-1935년에 제작된 도로원표-



기념비전 한 켠에 마치 자기도 기념비전의 일부분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돌덩이가 하나 있다.


도로원표(道路元標) 라고 쓰여 있는  지역과 지역간의 거리를 알려주는 "도로원표" 이다. 


이 도로원표는 칭경기념비가 세워질 때 함께 놓여진걸까? 


그렇지 않다면 저기 있을 수 없을텐데???


1914년 조선총독부가 '시가지의 원표 및 1.2등 도로표'를 고시하면서 만들어진 이 돌덩이는 


최초 현 세종로사거리 중심 (지금 이순신장군 동상 자리)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량이 증가하자 1935년 새로 제작하여 세종로사거리 양쪽에 설치하였으며 


1966년 광화문 지하보도 및 도로 확장공사의 이유로 칭경비전 내부로 옮겨왔다.


원래는 다른 자리에 있었다가 옮겨온 곳이 왜 하필 칭경비전 내부였을까???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졌던 (지금은) 아무 쓸모도 없는 이 돌덩어리가 왜 이 곳에 들어와야만 했을까? 


(도로원표논란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65 )






서울시에서는 1997년 시민들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접근이 용이하고 찾기 쉬운 "광화문 미관광장"에 새로운 도로원표를 세웠다.


서울과 전국 53개 도시간의 실제거리와 64개 외국도시거리를 바닥에 표시하였다고 한다.


"접근이 용이하고 찾기 쉬운" 곳이라고는 하나 이곳을 둘러보는 외국인 및 시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시민은 둘째 치고 외국인이 이곳을 찾았을 때 볼 수 있는 외국어로 된 설명문을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그 의미도 너무 간략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더럽다. 매연에 찌든 돌덩어리를 보는 느낌? 


설상가상, 이곳이 실제 도로원표위치가 아니란다.


실제 도시간의 거리측정 원점은 서울특별시 도로원표의 진위치인 광화문사거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광화문 사거리, 도로원표 진위치에 가면 직경 50cm 의 황동한 도로원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즉, 새로 만들어진 도로원표는 그저 설치물을 가져다 놓은 기념관 역할을 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왜 이런 얘기를 어느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까? 



칭경비전에 어이없게 놓여져있는 1935년 도로원표의 이전 혹은 폐기와 함께 


새로 만들어진 도로원표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서울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서울시 공무원들은 칭경비전내에 도로원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