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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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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참으로 나약했다.세상 모든 것에 무궁무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나 쉽게 싫증을 냈다.작심삼일은 고사하고 작심하루를 못가는 날이 허다했다.한 번 시작한 걸 끝맺은 적을 손에 꼽을수 있었을 정도로 수없이 포기를 했다.어느 한 분야만 그랬던것도 아니고 공부, 취미, 운동 하다못해 연애까지...그야말로 [프로중도포기자] 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처참히 사랑에 실패한 후 인생최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나 자신에게 오기가 생겼다.한편으론 '뭐하나 제대로 끝낸 적 없는 놈이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자괴감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넌 이를 악물고 버틸 자신이 있는가?'그리고 난 나 자신에게 대답했다. 버티겠노라고. 이를 악물고 버티겠노라고. 그렇게 미약하게나마 10Km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다...
컴퓨터 인생 아들을 위해서라면 모든지 다 해주려고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컴퓨터라는 물건을 참 빠르게 접했다.내 첫번째 컴퓨터는 5.25인치 디스크 두 개가 달려있는 무려 286 컴퓨터였다.초록색(?) CRT 모니터가 육중한 몸을 본체에 맡기는 전형적인 데스크탑 모델이었다.그 당시 컴퓨터로 할 수 있던건 고인돌 이나 페르시안 왕자같은 게임이었다.게임을 한번 하려면 플로피디스크를 순서대로 준비해놓고 기다려야 했다.(플로피디스크라고 하면 어린 친구들은 무슨 소린가하겠지?) 어머니의 선경지명이었을까? 아님 내 미래의 복선이었을까?그 당시 찾기도 힘들었던 컴퓨터학원에 등록해서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하셨다.당시 배운 언어는 GW-Basic 이었다. 베네치아를 통해 키보드 연습도 적잖이 했던걸로 기억한다.그 때 더 열심히 했다면 ..
거울 나이 먹은 한 남자가 서 있다.청년도 아니고 중년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다.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깊은 주름이 잔뜩 패여있다.작은 두 눈에는 피곤이 가득하고 푸석푸석한 피부에 수염이 듬성듬성 난 사내.'세상 풍파를 조금은 겪은 듯 하지만 아직 철없이 보이기도 한다.거울에 비친 나의 날 것의 모습.시간이 지날수록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지지만한 켠으론 적잖이 잘 늙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여 하루하루 날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지금은 거울로 흰머리를 찾아서 뽑고 있는 신세지만곧 흰백발의 머리를 자랑하며 '아따 그 놈 멋있게 늙었네' 라고 감탄할 날이 오겠지. 거울 앞에 서있는 나이 먹은 한 남자는 지금 멋있게 늙어가는 중이다. -100일동안 글쓰기 열두번째 날-
먹과 벼루 어릴 적 유난히 하이퍼였던 탓에 부모님은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날 서예학원에 등록시켰다.지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지만 예전에는 아파트 경로당에서 서예강좌를 열었다.지금으로 따지면 어르신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던 게 아니었을까?워낙 유명한 흙손인 나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못하고 성격이 차분해지지도 않은채 짧은 서예생활을 마쳤다. 그 때 기억이 많이 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 때 맡았던 먹 냄새만큼은 기억한다.벼루에 물을 붇고 먹으로 정성스레 갈고나면 맡을 수 있던 그 냄새.이후 먹물을 팔아서 편하게 쓰기는 했지만 우리 선생님은 한사코 먹을 갈게 했다.여전히 궁금한 건 먹이 먹물을 만드는 걸까 벼루가 먹물을 만드는 걸까?둘다 까만색이라 난 잘 모르겠다. -100일동안 글쓰기 열한번째 날-
무지개다리를 건넌 순덕이 순덕이는 작은 사슴이라고 해도 믿을 체형을 가진 치와와였다.작은 몸매와 대조적으로 유달리 컸던 검은 두 눈은 순덕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무려 15년을 산 순덕이는 내 성장과정을 함께한 소울메이트 같은 반려견이었다. 그런 순덕이의 마지막 가는 길은 너무나 드라마틱 했기에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나가셨고 난 늦잠을 자고 있었으니 날짜는 금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데 순덕이 녀석의 숨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뭐랄까... 굉장히 거북한 숨소리? 태어나서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내가 순덕이한테 다가갔을 때 이미 몸은 뻣뻣해진 상태였다.순간 '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순덕이 힘들겠어요... 오늘 무지개 다리 건너겠어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 아부지가 내 곁을 떠나시기 전까지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난 아부지한테 맞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어렴풋한 기억에 회초리를 맞거나 혼난 적은 있었어도 '맞아' 본 기억은 떠올리기 어렵다.어머니한테는 사실 몇 번 맞았고 그 상황도 생생히 기억난다. 하지만 그 맞았다는 것도 뺨을 몇대 맞은거 회초리를 몇 번 맞은 것 뿐이지그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셨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부모님들이 맞벌이를 하셨기에 신경을 덜 쓰셨던건 아니었을까 의심해보면가족하고 보낸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르기에 그 의심은 아닌거 같다. 하지만 난 아버지를 무서워했고 어머니를 무서워했다.물론 부모님을 무서워했다고해서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다. 부모님에게 느낄수 있는 무서움이랄까? 존경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무서움?두 분은 나에게 존경..
경복궁의 보물찾기 조선의 왕을 순서대로 외우라면 '태정태세문단세' 까지 밖에 못외우는 한국사 바보지만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엄청난 광팬이고 고궁나들이를 좋아한다.하지만 지식이 미천하여 항상 단청의 색상이나 보며 감탄을 할 줄 알지 그 안의 진정한 뜻은 알지 못해 항상 그 지식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넣게 된 고궁에 관한 책이 내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줬다.궁과 성이 어떻게 다른지, 건물에도 계급이 있다는 거(전-당-합-각-재-헌-루-정) 등...무엇보다 내가 그 책을 너무나 소중하게 가지고 있는 이유는 경복궁 내 보물을 대놓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근엄하기만 한 경복궁에서 조선시대 그 어떤 문화재보다 풍속적인 보물이 숨어있다는 걸 알려준 그 책.지금도 경복궁에 가면 난 다른 곳은 뒷전으로 ..
죄송합니다병 사회생활을 하면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많이 쓴다.생각해보면 미안한 일도 아닌데 유독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온다.그렇다고 가볍게 던지는 영혼 없는 말이냐고 한다면 또 그건 아니다.성향 자체가 소심하고 걱정이 앞서는 나로선 내 행동행동 하나에 신경이 쓰인다.내가 던진 말의 뉘앙스, 말의 높낮이, 단어의 선택 하나하나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던지는 내 최소한의 예의다.혹자는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하면 지는거라 그 말을 자주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죄송하지만 공유해주시겠습니까?'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자주 이야기를 한다.괜한 오해로 관계가 망가지는 걸 극도로 힘들어 하는 성격의 나에게 최소한의 방어막이 아닌가 싶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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