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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00일 글쓰기

지렁이

어릴 적에는 비가 오고 난 다음 날이면 길 여기저기 지렁이들이 그렇게 나와 돌아다녔다.

걔중에는 밟혀 죽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10에 8은 아이들의 장난으로 몸이 반 토막나 죽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렁이를 손으로 만지는 용기따위는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그저 길죽한 분홍색 얇은 소세지 같은 지렁이가 귀엽게 느껴진다.


학교에서 지렁이는 땅 속에 살며 흙을 섞어주는 역할을 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고 배웠는데

그 영향이 때문인지, 아니면 눈도 없는 녀석이 꿈틀대는 게 안쓰러워서인지는 모르겠다.


<이미지출처: http://nurinori.com/search.do?category=ALL&searchKeyword=%EC%A7%80%EB%A0%81%EC%9D%B4>


피부로 숨을 쉬는 지렁이들은 비가 오고 나면 숨쉬기가 힘들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지렁이 생애 가장 위험한 날이다.


흙에서 나와 그 자리에 있으면 좋으련만 눈도 없는 녀석들을 힘겹게 꿈틀되며 어디론가 나아간다.

그나마 정원을 빠져나가지 못했다면 다행이지만 아스팔트까지 진출한 녀석들의 생사는 장담하기 어렵다.

어릴 적부터 '아스팔트 지렁이' 는 나뭇가지로 집어 아파트 정원 어귀에 던져 주었다.

그것이 내가 지렁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 이후 땅을 파고 다시 들어갔는지 개미들의 밥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많던 지렁이들이 다 어디갔는지 이제는 비가 온 다음날 지렁이들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비가 와서 축축해진 땅 속에서도 숨쉬는 법을 터득한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학습이 되서 아스팔트로는 안나와야 되는 것을 안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분홍색 기다란 소세지 같은 녀석들을 보기 어려워졌다는게 조금은 서글프다.


 

-100일동안 글쓰기 마흔네번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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