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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2013년 하계여행] 뚜르드 동해안 Stage 1

사진을 대량 포함하고 있는 포스팅입니다.

용량의 압박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올 여름휴가는 어떻게 보내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면서 여행기를 찾아보던 중 우연히 눈에 띈 제목 .. 


"동해안 자전거 일주"


제목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와 백사장, 눈을 돌리면 병풍처럼 둘러쳐져있을 짙푸른 색의 높은 산들.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니 이보다 더 아름다울 여행이 또 어딨을까?

2011년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한 경험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나에게는 최고의 휴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자! 튼튼한 두다리가 있는데 못갈건 또 뭔가!?


여행지가 정해졌으니 여행 준비를 해야할 텐데 출발하는 날까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잠이야 가다가 몸 뉘이고 비 피할 곳 정도만 있으면 될 것이고, 길이야 표지판이 다 알려줄테니. 게다가 성수기가 지나 출발하는 늦여름휴가라 버스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걸렸던건 출발지를 어디로 하느냐였다. 회사원이다보니 아무래도 길게 휴가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강릉에서 출발해서 부산까지' 가 최초의 목표였으나 문제는 어마어마한 거리였다. 4박5일이라는 시간안에 강릉에서 부산을 간다는 건 쉬지않고 페달질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때로는 자전거를 끌고 걷기도 하고 좋은 풍광이 있으면 즐기고 가기도 하는 내 여행 스타일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정해진 출발지는 동해시. "동해"안 일주도로를 달리는데 "동해"에서 출발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게 보였다.

그리고 여행일정도 그렇게 빡빡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2013년 나의 여름휴가는 동해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여행일정을 늘려보고자 금요일 새벽 버스를 타고 동해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미리 예매해 놓은 저녁 11시 30분 동해행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았다. 늦은 밤인데도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각 보다 많았다. 


4박 5일 여행을 가는 내가 준비한 짐이라곤 와 여벌의 속옷과 자전거 그리고 사진기와 얇은 책 한 권이 전부.더 이상의 짐은 그야말로 짐만 될 뿐이다. 나만의 자전거여행의 장점이라고 할까?


옷은 매일 밤 빨아서 말리면 되고 속옷이나 몇벌 챙기면 그만이. 2011년의 아픔을 기억하기에 여기에 썬크림과 로션만 추가했다. 이거면 충분하다. 



플랫폼으로 들어온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버스가 올때 까지 기다려준 여자친구의 모습이 보였다.같이 떠나는 것도 아니고 떠나 보내는건데 그 시간을 같이 해준다는 거 자체가 고마운 일인 것 같다.

떠나는 사람이야 설레임을 안고 가면 그만이지만 떠나보내는 사람은 허전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야 하니...


버스는 정시에 고속버스터미널을 빠져나가 동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야간고속버스를 처음 타보는거라 가면서 밤풍경도 좀 보고 불 켜놓고 책도 좀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역시나 "머기자(머리만 기대면 자는)" 는 변하지 않기에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느껴오는 한기에 잠에서 깨보니 사람들이 주섬주섬 내릴 준비를 한다. 곧 도착할 모양이구나.. 하며 커튼을 열고 창밖을 보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아.. 날씨가 더워도 좋고 바람이 많이 불어도 좋다! 비만 내리지 말아다오...] 라고 간절히 기도했건만 종교가 없어서 그런지 꼭 이런 부탁은 들어주질 않는다.




함께 버스를 타고 왔던 사람들 대부분이 동해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새벽 3시. 

강한 바람과 함께 비까지 내리니 터미널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게다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각자 갈길로 떠나가 버려 결국 남은 건 나 혼자였다. 어떻게든 잠을 자야하기에 추운 비바람을 맞으며 그마나 따뜻해보이는 자판기 옆 벤치에 몸을 뉘여 잠을 청했다.


새벽 5시.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일정은 시작되어야 했다. 천둥번개가 치는 것도 아닌데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비록 날씨가 추웠고 비를 맞으면 더 추워지겠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땀을 내면 따뜻해질거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가장 불편한 점은 지도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새는 자전거용 핸드폰거치대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나 처럼 GPS 로 경로를 기록하면서 다니게 되면 배터리의 압박으로 인해 네비게이션 앱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결국 방법은 출발하기 전에 머리속에 가야될 곳의 루트를 외우거나 그냥 가는 수밖에. 나 같은 경우에는 큰 줄기만 외우고 그냥 발길 닿는대로 가는 편이다. 이번 여행의 경우도 7번 국도라는 큰 줄기만 잡고 상세한 경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7번국도]


동해고속버스터미널에서 빠져나와 7번국도를 타고 약 30분 정도 달리니 동해시경계가 눈에 들어왔다. 강하게 내리던 비도 점점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날도 밝아오고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 포인트는 삼척해변.


7번도로를 타고 가다 이정표에 "해변" 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핸들을 돌렸다. 여행에서 처음 보게되는 동해바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보는 바다는 언제나 신비스럽다.  구름 색으로 인해 바다는 더 검푸르게 보이고 그에 대비되어 파도는 더 하얗게 보인다. 아 이 광경, 마치 [노킹온헤븐스도어] 에 나오는 바다 같지 않은가??? 오히려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끝에 방문한 바닷가에서 뜨거웠던 여름을 찾기란 어려웠지만 백사장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들만이 이 곳의 뜨거웠던 여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 맞이한 풍경이 이정도니 앞으로 보게 될 풍경은 얼마나 환상적일까??? 잠시 7번국도는 잊어버리고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도로를 달리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나중에 7번국도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니까.


▲ 세상에서 가장 후진 항 [후진항]


동해바다를 옆에 두고 달리는 도로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근사한 풍경을 선사해줬다. 7번국도를 타고 갔으면 보지 못했을 동해안의 아름다움. 거기에 비까지 내려 있어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 주인을 잘못만나 고생(?)하고 있는 로미오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던 길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오래전 신두리 바다를 보면서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라고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아름다웠다. 서해바다가 봄날에 부는 따쓰한 봄바람 같다면 이 날의 동해바다는 그야말로 한여름 태풍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내내 동해바다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안도로에서는 바다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바다와 대비되는 초록의 나무들과 바다를 향해 간절히 무언가를 빌고자 하는 마음으로 세워진 다양한 조형물도 볼 수 있다. 바다만 보고 간다면 그 보다 지루한 일도 없을거다.


▲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한 편의 풍경화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니 어느새 삼척항에 도착했다. 삼척항이라는 얘기는 중요한 포인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

이른 아침이라 오가는 배도 없고 상점도 문을 안열어서 슉~ 하고 지나갔다.


쨔잔~~~

어떤길로 가던 [7번국도]만 찾으면 된다. 이 사진을 찍은 곳이 시멘트공장 앞인데 그래서인지 트럭들의 이동이 굉장히 많다. 여차 하는 순간 동해안 일주가 아니라 요단강 일주를 하게 될테니 항상 사주경계 확실히 하고 길을 건너야 한다.



드디어 마주하게된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동해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계속 오다보면 이 곳에 까지 오게 된다. 

정확한 지명은 모르지만 딱 오게되면 [아!!! 여기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가 왜 중요한가 하니 사진의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은 [자동차 전용 도로]로 자전거로는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에이 몰라! 자전거도 자동차의 한 종류라며!] 하고 정신줄 놓고 들어가도 결국 끌려나오게 된다. 


그럼 여기서 어디로 가야되느냐??? 사진 속에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트럭으로 가려진 부분...바로 저기에 숨겨져 있는 길이 존재한다. 처음엔 이 도로가 뭔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기기 전에 있었던 구(舊)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되는지 알았으니 조심조심 길을 건너서 즐겁게 달리도록하자... 는 개뿔....저 도로에서부터.... [아! 여기는 강원도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동해시를 출발해서 처음 맞이하게되는 언덕길... 아~ 물론 이 도로 풍광이 어마어마하다!!  언덕을 올라가는 동안 정신만 잃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곳의 풍경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단, 정신만 잃지 않는다면....


▲ 정신만 잃지 않는다면 이런 풍경을 계속 볼 수 있다.



해안도로 대신에 왜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겼는지 페달질을 하면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이 길이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스러운 이유는 한없이 오르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내리막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산만 보여주는 것도 아닌... 진짜 길을 보여주시 때문인 것 같다.


모두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전용도로 옆에 이렇게 한적한 시골길이 있다니...

그리고 내가 그 길을 달리고 있다니... 이보다 더 환상적인 휴가가 또 있을까???



그 길을 달리다 길을 잘못들어 갈 길이 막힌 어느 한적한 포구에 들어간다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더욱 즐거웠다.

아무도 없는 포구에 자전거 탄 여행객이라니.


▲ 빨리는 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잃어버렸다.



힘든 언덕길을 또 하나 올라와보니 정상에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주유소가 있었다. 지나는 차들이 없으니 아마 이 주유소를 운영하던 사장님도 [이대론 안되겠구나] 하고 떠나간 거겠지? 건물 외벽의 페인트는 바닷바람에 여기저기 벗겨졌지만 주유기의 색은 바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대비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한 때는 이 곳도 기름을 넣기 위해 차들이 줄을 서고 했겠지? 언덕이 많다보니 기름도 더 많이 소비 될 거고 여기 사장님을 떼돈을 버셨을게다.


저 빌어먹을 [자동차전용도로]만 생기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별 수 있나???

세상은 그렇게 변하는거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쳐지는 거지 뭐...


언제까지 이 주유소가 서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있는 동안 만큼은 주유소의 역할을 다 해야하기에 낸시랭 처럼 멋진 퍼포먼스는 보여주지 못하고 자전거에 기름을 넣어주는 척~ 사진을 찍었다.

오글... 오글... ㅋㅋㅋ


▲ 에메랄드 바다색


동해의 바다색은 정말 다양하다. 에메랄드 색인가 싶으면 짙은 녹색이었다가 자세히 보면 푸른색이되는.

하지만 그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에메랄드 빛이 아닐까 싶다. 내가 눈으로 보는 색을 그대로 담고 싶어서 몇번이나 사진을 찍었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시간이 갈수록 비가 잦아들고 하늘이 맑아졌다. 비를 맞아 젖었던 내 옷이 어느새 땀으로 젖었다.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게 햇빛이 나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니 차라리 비가 살짝 내려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비보단 햇빛이 낫지~


몇시간 되지 않은 얼굴인데 벌써 피곤에 쩔어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해안도로]라고 불렀던 이 도로의 정식명칭은 [낭만가도]라고 한단다.7번국도와 나란히 달리지만 바로 옆에 동해바다를 끼고 달릴 수 있는 아름다운 도로. [낭만]이라는 단어가 조금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로...

기회가 된다면 1번부터 18번까지 [낭만가도] 완주를 해보고 싶다.


이 사진을 찍은 곳은 낭만가도의 거의 끝자락 정도였다.


계속 봐도 전혀 질리지 앟는 동해의 풍경.파란색이 지루할 때 쯤 초록색이 나타나고, 초록색이 지겨울 때쯤 다시 파란색이 나타난다. 그러다 어느순간 위 사진 처럼 파란바다와 초록의산이 동시에 나타나 숨이 턱 말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중간중간 위치한 낭만가도 표지판 


혼자 여행하면서 전신 셀카를 찍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바로 볼록거울 셀카. 그 효과가 좋아서 한적한 도로에서 곧잘 찍곤 한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게 된 말 [오르막차로 끝] 


오르막의 강도가 심해져간다. 계속 페달질을 해야 되는데 막바지에 지칠까 걱정되서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걸어서 올라간다. 자연히 시간은 지체될 수 밖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허벅지에 무리가 가서 전체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려도 걷는다.


[왜 힘들게 자전거 여행을 해?]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때마다 뭐라고 답해줘야할지 참 고민스럽다. 종종[그럼 넌 왜 이 좋은 걸 안하는거야??] 라고 반문해보고 싶을때가 있다.


자전거 여행은 색다른 재미가 있다. 난 그걸 [눈에 보이는 풍경이 다양해진다] 라고 표현한다. 자전거를 밀면서 걸을 때 보이는 풍경, 천천히 페달을 밟을 때 보이는 풍경, 미친듯이 빨리 달릴 때의 풍경. 각각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보니 그만큼 풍경이 주는 느낌도 달라진다. 천천히 달리때는 몰랐던 바람의 소리를 내리막을 달리면서 들을 수도 있다. 이 재미에 빠져보지 못한 사람은 내가 왜 힘들게 자전거 여행을 하는지 평생을 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내리막을 얼마나 빨리 내려가나 간접체험


 비는 완전히 그치고 어느새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한 5시간정도 자전거를 탔을 때 였을까??

페달 밟는 속도로 늦어지고 몸이 힘들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침도 안먹은 상태에서 오르막내리막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휴식을 취해줘야한다.

한적한 시골길에 위치한 버스정류장. 이곳에서 초코바 두 개를 까먹었다.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한 초콜릿!! 초코바의 위력은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에서 먹어야 그 진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초코바로 식사를 대신할 수는 없기에 빠른 시간안에 아침을 먹어야한다. 땀으로 젖은 옷이 마르기 전에 다시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오르막차로 끝]이 가장 좋아하게 된 표지판이라면 가장 싫어하게 된 표지판은 바로[경사도표지판]. 이 표지판을 보는 순간 저 심연에 잠들어 있던 짜증이 밀고 올라온다. 경사도 5.5%. 심지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냥 올라가렴.. 언젠간 끝날테니... 젠장...


별 수 없다. 올라가는 수 밖에.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에 손을 흔들어 태워달라고 하고 싶지만 자전거여행자의 자존심이란. 


낭만가도는 차를 타고 갈때만 낭만가도인가보다. 그래도 이 길을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이유는 이 길 끝에 [오르막차도 끝] 이라는 표지판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표지판부터 내리막이 시작되어 힘들이지않고 몇 km 를 내려갈 수 있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 중 깨닫게 되는 철학적 통찰.



브런치라는 메뉴를 시킬 수 있는 시간대 쯤 한 휴게소에 도착하여 여행 첫 식사를 하게 되었다. 청국장 전문집 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고 있던 꽤 큰 규모의 식당이었는데 음... 이 식당은 물이 제일 맛있다. 도대체 청국장 전문집이라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건지. 태어나서 먹어본 가장 맛없는 청국장을 억지로 우겨넣는다. 먹지 않음 지칠테니...


그래도 따뜻한 밥과 국물을 마시니 온 몸이 사르르 녹아든다. 디저트로 가볍게 따뜻한 캔커피 한잔. 다시금 원기를 충전하고 길을 나선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


오르막길과 사투를 벌이던 중 맞이한 이정표. 삼척을 빠져나갈 때 쯤인 것 같다. 물고리 모양의 이정표가 친근하게 보인다. [전국도미낚시터 회의 명소]라니 다음에 꼭 방문해야겠군!!!


이제 울진까지 35km. 두 시간 뒤엔 울진에 도착할 수 있겠군.

 

오후 2시를 넘기고서부터는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반년동안 자전거를 한 번도 타지 않았던 몸이라 허벅지도 아프고 무엇보다 사타구니가 너무 아팠다. 사진과 같은 경사가 5분에 한번씩 나온다. 더 무서운건 이 경사가 초입의 경사라는 거. 강원도는 강원도구나 하는 느낌이 온 몸으로 전해진다. 



또다른 재미있는 항구 이름.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항구 [신남항]. 하지만 난 지금 안 신남.저 항구에 들어갔다오면 좀 신났을까???


하지만 왕복 1km를 다녀오기엔 내 몸이 너무 힘들었다..



또 다른 갈림길. 울진으로 가기 위해서 지나칠 수 밖에 없는 길인데 세갈래 길이라 자칫 길을 잘못 들면 태백으로 가버린다. 그나마 월천을 길을 들면 나중에 만나기라도 하지. 정신 바짝 차리고 길을 찾아야 한다. 


▲ 정신줄 잡으며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사진 한 장.



울진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들어왔다면 지옥행 열차에 탑승한 것을.....축하한다.

 

1일차 가장 난코스. 등산코스가 여러분 앞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인 곳에서 사진을 찍었음에도 느껴지는가 이 산의 높이가!!! 나도 이 길이 이리 길 줄은 꿈에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산 옆구리를 돌아서가는 거겠지 라는 생각만 했을 뿐.


하지만 정말 산을 오른다. 끝까지 오른다. 계속 오르막을 오른다. 차라리 월천 쪽으로 빠질걸...

그렇게 한 30분 정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을까??? 강원도의 끝이라고 알리는 표지판이 우뚝 서있었다!!! 처음으로 도 경계를 넘어가는 역사적인 순간!!


길 옆에 서있는 낭만가도 표지판이 '이 길도 낭만가도란다' 라고 알리고 있다. 하지만 30분동안 자전거를 끌고 등산을 한 나에겐 [낭만가도] 글자가 [암만가도] 로 보인다. 암만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길. 오르막길 끝에 내리막길이 있다고?? 아니다. 오르막길 끝엔 오르막길이 있다 ㅠㅠ


Good-bye 강원도!!!!


산 꼭대기에는 시멘트 공장이 위치해 있어서 다소 시끄럽다. 게다가 레미콘도 자주 왔다갔다 하니 안전에 유의하며 지나가야 한다.


강원도 경계를 지나면 바로 경상북도 경계판이 나타난다.


도 경계를 배경으로 셀카 한 장. 이미 얼굴은 피곤에 쩌들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 와중에 살겠다고 베어 문 초코바. 배경, 인물, 소품 그 어느 것 하나 조화롭지 못한 근래 보기 드문 사진이 탄생했다.


경상북도 경계판부터 신나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내리막길 초입에 위치한 작은 공원. 

공원 한 켠에 처음 보는(혹은 봤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가보니 [수준점] 이라고 하는 높이를 측량하는 시설이란다.즉, 현재 내가 서있는 곳의 높이는 139m 인 셈.

63빌딩의 높이가 264m 라고 하니 대략 그 절반인 31층 빌딩 높이 정도 된다고 보면 될까??? 근데 왜 더 높게 보이는거지??  



예상치도 않게 이 작은 공원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 받았다. 그냥 한 폭의 그림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풍경. 하늘의 구름과 산맥의 푸르름과 활짝 피어있는 철쭉이 이다지로 잘 어울릴 수 있다니.


날씨까지 좋아서 저 멀리에 있는 산의 모습까지도 보였다. 이 곳에 서서 얼마나 오랫동안 감탄을 했는지. 겨울에 눈이 와서 이곳이 전부다 하얗게 변한다면 그 또한 장관일거라는 생각도 했다.


공원 한 켠에 계단을 오르면 정자와 마주친다. 더 높은 곳에서 더 시원하게 두변 경치를 볼 수 있으니 이 곳을 지나는 여행객들은 꼭 한 번 들러보시길...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아래로는 자동차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다.  자동차를 타고 갔으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을 생각하니 자전거로 여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 높이가 건물 31층 높이 밖에 안되나??? 더 높아보이는데...


▲시원하게 달리게 될 내리막길이 한 켠에 보인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날씨까지 좋아서 그 느낌은 환상적이었다. 산바람이 강해서 조금 추웠던 것 빼고는.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갈 길을 간다. 오르막의 경사가 심했던 만큼 내리막의 경사도 심하다. 꼬불꼬불 내리막을 미친듯이 달릴 때는 덜컥 겁도 난다. [브레이크가 안들면 어쩌지... 돌이라도 밟으면 튕겨져 나갈텐데...] 하지만 그 속도감에 빠져들면 걱정은 금방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오히려 그 긴장감을 즐기게 된다.


드디어 오늘 일정의 종착점으로 정했던 울진에 도착했다. 거기서 만난 거대한 크레인과 울진 원자력 발전소. 도시가 클 것이라 기대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작은 규모에 놀랐다. 아직 페달을 밟을 힘도 남아있고 해도 길게 남아 있는 것 같아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가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이렇게 일정을 수시로 변경해도 되기 때문에 편하다. 


아침에 비가 온 것은 마치 꿈인냥 날씨는 너무너무 좋아졌다. 점심을 먹었던 울진원자력발전소 근처가 울진읍인 줄 알았은데 그래서 [뭐 읍이 이리 작아] 라고 생각했는데 더 내려와보니 울집군청 근처가 시내였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내가 어마어마하게 큰 건 아니지만 지나쳐온 수많은 동네들과 비교해보면 꽤 큰 규모의 동네였다.

 

울진읍을 지나 페달을 밟다 큰 안내판을 마주하게되었다. 동해에서 삼척까지 [낭만도로]를 달려왔다면 앞으로 내가 달릴 길은 [해파랑길] 이란다. 이름 참 이쁘다. [해.파.랑] 일단 해가 지기 전까지 달려보기로 했으니 해파랑길한번 가보자~


[해파랑길]의 매력은 정말 바다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 [낭만도로]는 한 발 떨어져서 바라봐야 한다면 [해파랑길]은 가까이서 봐야 더 아름다운 길이었다.


게다가 거센 파도가 바위에 계속 부딪히며 만드는 하얀 포말과 그 소리가 정말 장관이었다. 어떨 때는 파도가 철망을 넘어올 때도 있어서 재밌었다.


▲ 하얀 포말과 함께 파도가 부서진다


이 광경을 혼자 보기 아까워 동영상을 찍어왔는데 한 번 구경해보시길...


▲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 코가 큰 걸 보니. 재성이가 생각나는구나.


아름다운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다가 넓은 백사장과 하얀파도가 너무 아름다운 작은 해변가를 만났다. 왠지 이 곳은 그냥 지나쳐가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전거를 한 켠에 세워놓고 백사장으로 내려갔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큰 파도가 치는 곳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이렇게 웅장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더 좋았던건 이 곳에 아무도 없었다는거 ㅋㅋㅋ 마치 날 위한 해변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 발자욱


특히나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바위에 부딪혀서 부셔지는 파도의 모습이었다. 그 광경이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 불가사리... 이 사진 잘찍은 거 같은데..



백사장 끝에 거대한 바위더미가 있었는데 바위더미로 쉴새없이 파도가 몰려와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냈다.

조금이라도 더 근사한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바위 쪽으로 다가갔다.


▲ 이렇게 찍으면 감성사진이라매? 




처음 밟은 백사장과는 달리 바위더미 근처는 조약돌로 이루어진 백사장(?)이었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가면서 조약돌이 쓸려나가는데 그 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서해안쪽에 몽돌해수욕장(?) 이라는 곳도 이렇게 조약돌로 이루어졌다는데  한번 가봐야겠다.


그 소리를 동영상으로나마 담아왔다.


찍사의 욕심이랄까. 바위더미에 부딪히는 파도의 모습을 더 역동적으로 담고 싶었다. 그래서 바위더미 위로 올라갔다.

역시나 눈 앞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로 멋있었다. 그래 다음번엔 더 큰 파도가 치겠지 하면서 계속 기다렸다. 그래도 젖기는 싫었는지 물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찍었다.



과유불급. 욕심이 과하면 화를 입는다고 했던가? 큰 파도를 기다리던 나에게 정말 큰 파도가 닥쳤다. 그 정신에 이 사진은 어떻게 찍었는지. 저 물을 맞으면 왠지 쓸려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의식중에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찔한 상황. 그 삐죽한 바위 위로 어떻게 뛰어내릴 생각을 했는지. 그래도 ㅋㅋㅋ 이 사진을 한 장 건졌잖소!!!


▲ 언제 그랬냐는 듯 파도는 다시 잠잠해졌다... 요물.. 요물!!!


해파랑길임을 알려주는 표식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하지만 아쉬운 건 같은데서 안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내가 제대로 된 길을 달리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생각 없이 달리다가 어느 순간 이런 표식을 만나면 [아... 내가 제대로 가고 있나보다..] 할 정도?


해파랑길은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어 자전거여행자들의 보다 안전한 여행을 도와준다. 기본적으로 도보여행과 자전거여행을 위한 길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 쭉 뻗어있는 해파랑길. 이런 길을 달릴 수 있다는건 큰 행운이다. 


중간에 어리버리 길을 찾느라 고생을 좀 했고 위험하게 자동차길을 잠깐 들어갔다 오니 이 곳에 도착해있었다.(참고로 이곳에 오려면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자동차도로를 살짝 걸쳐서 와야한다. 앞서 봤던 해파랑길 안내도에서 25번에 해당한다) 원래 울진이 대게로 유명하단다. 내가 갔을때는 철이 지나서인지 대게집 모두 문을 굳게 걸어 잠가서 쓸쓸한 모습이었다.


대게 먹는거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 곳은 갈매기 비행장인가봉가??? 저기 보이는 거뭇거뭇한 것들이 다 갈매기다. 얘네들은 저렇게 쉬나보다. 가끔 이륙해서 바다로 나가는 놈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저렇게 쉬고 있다.


닫혀버린 망양해수욕장.


길을 달리다가 마주치는 표지판. 때로는 기쁨을 주기도하고 때로는 실망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위 표지판을 찍은 이유는 처음으로 [포항]이라는 지명이 나타난 표지판이기 때문이다. 즉, 포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힘을 내서 페달을 밟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열심히 달려왔는데 직전에 봤던 표지판과 거리차이가 얼마 안난다면 정말 짜증난다.


여하튼 동해시를 출발해서 열심히 달리다보니 어느새 포항이 그렇게 멀게 남아있지만은 않게 되었다....

나. 좀. 짱.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슬슬 일정을 마무리해야 할 때였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표지판 [울진공항]

원체 말이 많은 지방공항이 어느 정도인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거리가 얼마나 될 지 그리고 길이 어떻게 이어져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폐쇄된) 울진공항. 지금은 비행훈련원이라는 명목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수천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어 만든 공항이라니 어이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느낀거지만.. 누가 여기에 비행기를 타러 올까. 내가 들렀다 온 근처에 있는 마을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은 울진읍.... 


이걸 기획한 사람은 시장조사라는 것을 하긴 했을까??? 이런 어이없는 일은 두번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 울진공항을 뒤로하는 마음이 무겁다...


체력도 거의 바닥나고... 해도 어느덧 산을 넘어갔다. 곧 어두워질테고,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에 일정을 마무리해야했다. 그래도 이렇게 노을지는 풍경을 보니 다시금 감탄사만 연발.


일정의 마무리를 평해읍에서 하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중간에 아이폰의 배터리가 나가서 울진의 갈림길에서부턴 GPS를 못키고 왔는데 길로만 달렸을 때 32km를 더왔으니 대략 40km 정도 초과해서 일정을 마친 것 같다. 130km(추정)의 대장정.


로드사이클도 아닌 미니벨로로 130km를 타면 사타구니는 기본이고 어깨와 허리에 상당한 무리가 온다. 다음번 자전거 여행은 꼭 로드사이클 끌고 와야지!!!


평해읍 초입에 위치한 [귀빈모텔]을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그 앞에 또다른 이름의 모텔이 있긴 했었으나 왠지 오늘만큼은 귀빈이 되고 싶은 마음에 ㅋㅋㅋ


다소 늦은 시간인데다 마을 자체가 너무 작아서 식당이라고 하는 것들은 전부 문을 닫았다. 할 수 없이 편의점에 들러 밥이 될 만한 것들을 사와서 나름대로의 만찬을 즐겼다. 힘든 일정을 마무리하는 맥주는 서비스 ㅋㅋㅋ


이렇게 나의 뚜르드동해안 Stage.1 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뚜르드 동해안 1일차 


2013년 8월 31일 오전 5시 19분 ~ 2013년 8월 31일 오후 7시(추정)


동해시 - 삼척시 - 울진군 - 평해읍


총 이동거리 : 128.29 km

총 이동시간 : 9시간 (추정: 마지막에 핸드폰 배터리 방전)

최고 속도 : 46.7 Km/h

평균속도 : 10.71 km/h


사용경비


고속버스비 (강남고속버스터미널 - 동해고속버스 터미널) : 27,200원

간식비 (주로 음료수와 초코릿바) : 10,150원

식사비 (브런치, 늦은 점심, 저녁) : 30,000원

숙박비(귀빈모텔) :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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